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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팔자를 논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명리학적, 육임학을 병행하여 상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무술배우 성 룡의 팔자이야기.... 1954년 음 4월 7일. 양 5월 9일 乙 己 甲 丑 巳 午 9 丁 丙 乙 甲 癸 壬 辛 庚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 어린시절 학교(學校)에 입학(入學)하고 1학년 때 장난기가 심해서 퇴학(退學)을 당했다고 한다. 대략 7 - 8세 정도 된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때는 己亥년으로 볼 수가 있다. 이 해는 인성(印星) 즉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얌전한 것이 인성(印星)이다. 그러나 강한 자유주의(自由主義)가 발동(發動)되니 인성(人性)은 사라지고 부모(父母)의 말도 듣지 않고, 동(東)쪽으로 가라고 하면 서(西)쪽으로 가는 청개구리 천방지축(天方地 軸)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내고 9세부터 19세까지 경오대운(庚午大運)이다. 이 시기에는 우점원의 희극학교로 10년 간 입학(入學)을 한 기간이다. 이 시기에서 문맹인(文盲人)이 되었다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식상(食傷)이 왕성하여 공부보다는 예, 체능(藝體能)하기에는 적당한 시기다. 아마 예, 체능(藝體能)에는 천재적(天才的)인 재능(才能)을 보였을 것이다. 공부는 하라고 해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외로웠다고 보겠다. 이러한 점은 어린 나이에 자유롭게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 켜줄 완벽한 보호벽(保護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것은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다. 10년 간 연기(演技)와 무술훈련을 혹독하게 하면서 사망하더라도 학교(學校) 측에서 일체의 배 상책임이 없다는 정도로 할 정도면 훈련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의 외로움을 겪었을 지는... 이 대운(大運)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19세 - 29세 신미대운(辛未大運):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있고 그 현실을 극복하고자 학교생활 하면서 액스트라 역할을 한 것으 로 보는데 연기 공부를 하면서 보조 연기자로 나선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목적을 위해서 물 불 안 가리고 한다. 1980년 대(大) 스타(STAR)로 된 것도 이러한 적극적으로 악착같이 활동한 덕(德)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가지고 활동을 하게 되면 끝내는 자신의 명성(名聲)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의 몸으로 하는 것은 심리적(心理的)으로는 오직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철저한 각오를 하면서 하는 것이므로 성공을 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보수(급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목적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히트 영화(映畵)인 취권(醉拳)도 이 대운(大運)의 기간에서 만들어졌다. 1979년 기미(己未)년이다. 자신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미친 듯 혼신(魂神)의 연기력(演技力)을 발휘한 영화(映畵)다. 취권(醉拳)의 성룡(成龍)이 되어서 대표적(代表的)인 작품이다.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으나 크게 이름을 올린 작품이라기보다 당시 쿵푸 영화는 그야말로 마구 찍어낸 공장에서 제작한 것 같은 영화(映畵)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고, 이 시기에 특히 나 유와 노예계약(奴隸契約)에 가까운 조건으로 고만고만한 영화(映畵)를 찍 던 성룡(成龍)은 회의(懷疑)를 품으면서 점차 나 유와 사이가 벌어진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감소하기는 했지만, 이전에는 추석이나 명절등 가족(家族)들이 모이면 성룡(成龍) 영화(映畵)를 하나씩은 개봉(開封) 하는 것이 관계처럼 되어 있었다. TV 에서도 최소한 성룡(成龍)이 출연(出演)을 한 영화(映畵)한 편씩은 꼭 틀어줬다. 케이블에선 아직도 성룡(成龍)이 출연(出演)을 한 영화(映畵)를 잊을 만 하면 틀어준다. 이는 성룡(成龍) 영화(映畵)가 가족(家族)들과 보기엔 상당히 무난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명절은 성룡(成龍). 영화(映畵)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 임신대운(壬申大運)과 계유대운(癸酉大運)으로 들어서면서 영화배우(映畵排優)로서는 특히 무술(武術) 액션배우로서는 별로 좋은 시간이 아니다. 자신을 위하여 엄청난 노력과 기회(機會)를 잡으려고 하지만 재물(財物)로 이어지지 못하면 영 화(映畵)가 흥행성공(興行成功)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흥행성공(興行成功)은 배우나 관객이나 제작사 등....이 모두에게 유명세를 떨치게 하는 동력이 다. 흥행성공(興行成功)을 하지 못하면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대운(大運)의 기간에서는 배우로서는 힘든 사막과 같은 악조건이다.
참고로, 1979년 개봉(開封)한 취권(醉拳)만 해도 무려 서울관객 89만 관객(觀客)이라는 엄청난 대박을 거 둬들이면서 흥행(興行) 보증수표(保證手票) 역할을 했다. 그렇게 90년 후반까지도 기본은 하던 흥행세를 이어 나아갔으나, 2000년대 들어와 서는 한국에서도 한풀 흥행이 꺽이면서 - 신해혁명 -처럼 개봉(開封)도 못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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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명리학 편지 신축년 음력 유월달 중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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