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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편지<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명리와 육임을 병행하는 상담 이야기

 

 

                                                    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팔자를 논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명리학적, 육임학을 병행하여 상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노벨 평화상 수상자 헨리 키신저 박사

 

       생년월일. 1923년 5월 27일

 

         庚  丁  癸     (辰巳)

         子  巳  亥

                               7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출생: 독일(獨逸)에서 태어난 미국(美國)의 유대인(猶太人)계이며,

         미국인(美國人)으로서 정치인(政治人)이자 외교관(外交官)이다.

        1923년 독일 바이에른주 퓌르트에서 하인츠 알프레트 키싱어(Heinz Alfred Kissinger)라는

        독일식 이름으로 태어났다.

        1923년 바이마르 공화국(共和國) 바이에른 자유주에서 유대인(猶太人) 집안에서 2남 중 장

        남(長男)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본 이름은 독일식인 '하인츠 알프레트 키싱어(Heinz Alfred Kissinger)'였고,

        헨리 키신저는 미국(美國) 이민(移民) 후 영어(英語)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여정:

        그의 가족(家族)은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 1938년 15세 戊寅년 미국으로 간 것은....부모(父母) 따라 갔으니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가는 것인데 이 시기는 17세 이전 병진대운(丙辰大運)이다.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타국(他國)으로 간 것인데 솔직히 좋아서 간 것은 아니다.

        가기 싫었다. 그것은 무인(戊寅)년에서 현실대로 있기를 바라는 것이며 지금의 상황을 바

        꾸고 싶지 않는 것이므로,

        미국(美國)으로 가면 잘되는 것인가를 계산(計算)하지 않았고,

        부모(父母)의 뜻에 따라서 간 것일 뿐인데....

        오히려 이러한 기회(機會)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機會)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이때 주인공은 공부하고 학문(學文)을 하는 인성(印星)이 강한 대운(大運)

        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병진대운(丙辰大運)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戰)에도 종군(從軍)하였고, 훈련(訓練)을 받으면서 1943년

       에 미국(美國) 시민권(市民權)을 득(得)했다.

       1943년에 미국(美國) 시민권(市民權)을 득(得)했다. 시민권(市民權)은 미국인(美國人)이 되

       었다는 것이며 미국(美國)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얻은 것이다.

       1943년은 20세 계미(癸未)년이고 이때는 을묘대운(乙卯大運)이다.

       계미(癸未)년의 의미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공부 외에 다른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다. 단순하게 살아가려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공부는 다른 의미로는 즉 주인공 키신저의 입장에서는,

       미(未) 인성(印星)은 본래의 신분(身分) 즉 유대인(猶太人)의 의미다.

       즉 조상(祖上)의 의미가 되면서 원래의 국적(國籍)을 의미하며 이 신분(身分)에서 변화가 있

       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그러나 현실적(現實的)인 필요, 사정(문제)에 의하여 신분(身分)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가족(家族)이 미국(美國)에 와서 살아가려면 시민권(市民權)을 득(得)

       하는 것이 당연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오히려 반가운 일인데,

       주인공 키신저 원래의 신분(身分)이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순(矛盾)으로 생

       각할 수가 있으나 운(運)의 변화에 대한 작용을 해석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이 사람의 태어난 근본(根本), 정신(精神)이고 뿌리이다.

       현실은 변해도 근본(根本), 정신(精神)과 뿌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은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고등학교(高等學校) 1학년을 마친 후 야간학교(夜間學校)를 다니기 시작했고,

       낮에는 면도기 공장(工場)에서 공원(工員)으로 일을 했다.

       고등학교(高等學校) 졸업 후 뉴욕(NEW YORK)에 위치한 시티 칼리지에 입학(入學)하여,

       회계학(會計學)을 파트타임 학생(學生)으로서 공부했다.

       이 시기의 주인공이 공부를 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은 것은 우선 가족(家族)이 전부 미국(美

       國)으로 옮겨서 생활기반이 잡히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는 부분이고,

       다른 이유에서는 이 시기에 주인공의 운기(運氣)의 흐름을 보면....

 

       청소년(靑少年)시기인 17세 이후는 을묘대운(乙卯大運)이다.

       학생(學生)의 공부하는 시기에 대운(大運)에서 재물(財物)의 운(運)이 발생되면 우선 생활

       (生活)에서 어려움이 있고, 공부하는 기회(機會)를 압박하여 정신적(精神的)으로 여유가 없

       다.

       재물(財物) 기운(氣運)은 공부하는 기운(氣運)을 파괴하여 집중력(集重力)을 흐트러트리는

       것이기 때문인데, 다행인 것은 그래도 어떻게 하든지 신변(身邊)의 어려운 조건속에서 악전

       고투(惡戰苦鬪)를 해가면서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력(意志力)을 볼 수가 있다.  

       고등학교(高等學校) 시절은 기묘(己卯)년. 경진(庚辰)년. 신사(辛巳)년이다.

 

              일주 庚子 월주 丁巳

                               대운 乙卯   월건 丁巳

                    행년 1939년 己卯년 - 1940년 庚辰년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學生)으로서 경제사정(經濟事情)으로 인하여 가장 힘든 해였던 것은

      1939년 기묘(己卯)년인데 -- 이 작용은 재물 기운이 공부 기운을 파괴해 버리니 책을 보면

      머리가 윙윙거리면서 두드러기가 날 정도이니 거의 공부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희망이 없

      던 해였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방황하게 되며,

      아마 공부를 쉬게 되는 공백기간(空白期間)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듬해 1940년 경진(庚辰)년으로 되면서 심기일전(心機一轉)하게 된다.

      의지력(意志力)이 되살아나서 도전정신(挑戰精神)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장(工場)에서 일을 하면서 학업(學業)을 한다는 것은 경진(庚辰)년에서 가능한 일

      이다.

      이것은 역학용어(易學用語)에서 비견겁재(比肩劫財)의 기운이 되어서 겁없는 강한 도전정신

      (挑戰精神)에 해당하고 이 해는 주인공의 의지력(意志力)이 매우 강하고 꿋꿋함이 있다.

      경제사정(經濟事情) 또는 집안 사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굴(屈)하지 않고,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어려움 속에서 야간학교(夜間學校)를 다니면서 학업(學業)을 계속한

      다.

 

    주인공은 또....

     정치학(政治學)을 전공한 그는 1950년 학사학위(學士學位)를 최우수 성적으로 득(得)했다.

     그 후 같은 학교(學校) 대학원(大學院)에서 1951년에는 정치학(政治學) 석사(碩士),

     1954년에는 정치학(政治學) 박사학위(博士學位)를 득(得)했다.

     박사학위(博士學位) 득(得)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國際政治學) 교수(敎授)로 재직(在職)하면서 정부(政府)와 관

     련된 일을 했다.

     이렇게 학사(學士). 석사(碩士). 박사학위(博士學位)를 득(得)하는 과정에서는....

     오직 관운(官運)이 작용해야 논문(論文)을 쓰게 되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자신의 목적을 향하여 도전하는 것인데,

     주인공은 이시기는 갑인대운(甲寅大運)으로 역시 재물(財物)의 대운(大運)이다.

     1950년 경인(庚寅)년. 1951년 신묘(辛卯)년. 1954년 갑오(甲午)년이다.

     이 기간은 주인공이 무섭게 공부를 한 이유가 있다.

   

     재물(財物)의 대운(大運)이 공부를 방해하지 않고 관(官)을 강하게 지원하여 자신의 관리를

     무섭게 절하고 경제적(經濟的)인 여유가 없는 사정이 있으면서,

     주어진 기간 안에서 자신이 목적한 공부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이 기간에서 경신(庚辛)비견(比肩) 겁재(劫財)의 작용이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경신(庚辛), 비견(比肩) 겁재(劫財)는 재물(財物)을 압박하여 학문연구(學文硏究)를 방해

     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견(比肩) 겁재(劫財)의 역할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반드시, 꼭 해야한다는 각오로 무장하

     게 하는 작용을 한다. 무섭게 목적을 달성하는 각오인 것이다.

     여기에 이민가족(移民家族)이 갖는 특수성이 더 한 것이기에 그 정신력(精神力)은 무서웠을

     것이다.

     박사학위(博士學位)를 득(得)하는 1954년 갑오(甲午)년에서는,

     관운(官運)이 최고조에 달하여 무난하게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1954년 갑오(甲午)년을 보면....

     갑(甲) 재물(재성)이 (午) 관운(官運)을 더욱 활발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면서 여기서 더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이 갑(甲) 재물(재성)의 성분이 중요하다.

     이 성분은 재물(재성)이라는 물질적(物質的)이 아니고 학문(學文)의 성분으로 변하게 되니,

     주인공이 이 해에는 공부하는 조건이 경제적(經濟的)인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장학금(奬學金)을 받는 조건에서 공부를 한 것이다.

     공부를 방해하는 재물(재성)이 오히려 장학금(奬學金)으로 변하였으니 이렇게 오행(五行)은...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일으키는 기적(奇績)의 작용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외에 또 다른 작용을 확인해 보면....

     바로 갑인대운(甲寅大運)이 또 재물(재성)에 해당하는 운기(運氣)작용인데....

     대운(大運)이라는 것은 바로 주인공에게는 사회운(社會運)이다.

     사회운(社會運)을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벌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갑인대운(甲寅大運)이 하는 작용이다.

 

     주인공 장남(長男)으로서 가족(家族)의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갑인대운(甲寅大運)은 매우

     훌륭한 자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박사학위(博士學位) 득(得)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國際政治學) 교수(敎授)로 재

     직(在職)하면서 직위(職位)를 보장해준 것이다.

     이민자(移民者)로서 유대인(猶太人)계 미국인(美國人)으로서 31세의 영맨(young man)의 나이

     로 사회(社會)의 첫 발을 훌륭하게 시작을 한 것이다.

 

     박사학위(博士學位) 득(得)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國際政治學) 교수(敎授)로 재

     직(在職)하면서 정부(政府)와 관련된 일을 했다고 전해지면서,

     15년 후인 46세인 1969년 기유(己酉)년,

     닉슨 행정부(行政府)가 출범하자 대통령(大統領) 안보(安保) 보좌관(補佐官)으로 합류했다.

     정치계(政治界)에 중요한 포지션이 된 것이다.

     또 4년 후 50세 되는 해 1973년 계축(癸丑)에는 윌리엄 P. 로저스 국무장관(國務長官)이 사

     임(辭任)하자 56대 국무장관(國務長官)에 취임했으며,

     닉슨 대통령(大統領)이 사임(辭任)하여 부통령(副統領)이었던,

     대통령(大統領)을 승계(承繼)한 포드 행정부(行政府)까지 그 직(職)을 맡았다.

 

             일주 庚子 월주 丁巳

                                  대운 癸丑   월건 丁巳

                           1969년 행년 己酉

     중요한 내용을 분석해보면....

     우선 힘있는 사람의 은인(恩人)을 만나서 직접적인 도움을 받게 되면서 든든하고 권력(權力)

     있는 사람의 큰 도움을 받는다. 막강한 힘이 백 그라운드에 있는 것이다.

     1969년 46세의 나이로 닉슨 대통령(大統領) 안보(安保) 보좌관(補佐官)으로 합류했다.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로 입성(入城)을 한 것이다.

     1969년 행년 기유(己酉)년은 실력있는 사람의 지원을 얻으면서 숨은 실력을 인정받게 되어서

     마치 백마(白馬)를 탄 왕자(王者) 대우를 받는 기분이다.

     다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자세(高姿勢)로 인하여 주위의 시기(猜忌)를 사는 흠결(欠缺)이

     있게 된다.

     이흠결(欠缺)은 뒷날 자신의 혹평(酷評)을 받는 이유가 된다.

     다만 인격(人格)이 기본적으로 있는 주인공이기에 이미지에 큰 영향(타격)을 주지는 못하게

     된다.

 

     이 시기의 주인공은 강력한 보수주의(保守主義)였다.

     더구나 계축대운(癸丑大運)에서 안보(安保) 보좌관(補佐官)에 합류하고 난 후(後)에,

     더욱 강성(强性)의 매파로 변한 것이다.

     제37대 미국(美國) 대통령(大統領) 리처드 닉슨이 이른바 '닉슨독트린'을 발표해 아시아 정

     책(政策)의 변화를 천명(薦命)했다.

     주인공 같은 강성(强性)의 안보(安保) 보좌관(補佐官)의 영향이 있었다는 의미다.

 

     1973년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國務長官)이 사임(辭任)하자,

     56대 국무장관(國務長官)에 취임한 것은....

     이때 50세에 임자대운(壬子大運)이며 행년은 계축(癸丑)년이었다.

 

             일주 庚子 월주 丁巳

                                  대운 壬子   월건 丁巳

                           1973년 행년 癸丑

     이 시기는 임자대운(壬子大運)이다.

     1973년 행년 계축(癸丑)년.

     우선 반공주의(反共主義). 보수주의(保守主義)인 주인공이 이 즈음부터는 진보성(進步性)이

     강한 실용주의(實用主義)로 바뀐다.

 

     주인공이 진보성(進步性) 실용주의(實用主義)로 변하게 된 것은,

     국무장관(國務長官) 보다 2년 전인 안보보좌관(安保補佐官) 시절이다.

     중국(中國)의 문화(文化) 대혁명(大革命)기간이었던,

     1971년 8월 대통령(大統領) 안보보좌관(安保補佐官)이던 그는 중화 인민공화국 북경(北京)을

     극비(極秘)리에 방문해서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 1972년 임자(壬子)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大統領)과 마오쩌둥(모택동)간

     의 미(美). 중(中)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외교적(外交的)으로 역사적(歷史的)인 사건이다.

     이 시기는 소련(蘇聯)과 중국(中國)의 관계 악화(惡化)가 심화(深化)중이던 시기이고 이때

     미국(美國)은 중국(中國)을 미국(美國)쪽으로 끌어들여 이용해 소련(蘇聯)을 견제하기 위함

     이었다.

     2차 세계대전(世界大戰)이후 냉전시대(冷戰時代)에서 획기적(劃期的)으로 외교적(外交的)인

     일을 한 것이다.

 

     이 때는 임자대운(壬子大運)이면서 행년은 신해(辛亥)년이었다.

 

             일주 庚子 월주 丁巳

                                   대운 壬子   월건 丁巳

                            1971년 행년 辛亥

    정책(政策)을 입안(立案)하는 보좌관(補佐官)의 입장에서는 항상 신중(愼重)하게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오로지 통치자(統治者)인 대통령(大統領)에게 가는 것이며 큰 누

    (漏)를 끼치게 되는 것인데, 보좌관(補佐官)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통치권자(統治權者)인 대통령(大統領)은 그야말로 정권(政權)의 명운(命運)을 함께 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다.

    주인공이 1971년은 진보성(進步性) 실용주의(實用主義)로 사상(思想)이 강한데 그 당시 대통

    령(大統領)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며 대통령(大統領)보다 한발 앞서간 것으로 본다.

    닉슨 대통령(大統領)도 보수주의(保守主義)면서 한편으로는 실용주의(實用主義) 보수(保守)라

    고 해야 한다.

    대통령(大統領)의 묵시적(默示的)인 이해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正說)이다.

    이 1971년 행년 신해(辛亥)년의 운기(運氣)작용을 보면....

    주인공의 생각은 한발 앞서가는 정책(政策)으로 주도(主導)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변화를

    주도(主導)하면서 과감하게 미래(未來)를 만들어 가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고 통치자(統治者) 대통령(大統領)도 부담스러워 했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분위기속에서 주인공이 주도한 것은 모험(冒險)에 가까운 것이다.

    정치적(政治的)으로 큰 위험에 빠질 염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성(强性)으로 몰아붙인 것

    이다.

    그의 이러한 큰 업적(業績)에도 불구하고 공화당(共和黨) 정권(政權)은,

    다음 대통령선거(大通領選擧)에서 패(敗)하고 정권(政權)을 내주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기에 대통령선거(大通領選擧)에서 패(敗)했는가?

    한마디로 너무 빠른 속도로 외교전(外交戰)을 만들었던 것이 패착(敗着)인 것이다.

 

    결국은 개인적(個人的)으로 실용주의(實用主義)로 변화되는 사상적(思想的)인 것은 주인공

    개인적(個人的)이면서 이러한 대운(大運)의 사상(思想)은 큰 게임의 대통령선거(大通領選擧)

    에서는 국민(國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주인공이 직접 대통령선거(大通領選擧)에 후보(候補)로 나서도 마찬가지로 국민(國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므로 낙선(落選)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큰 업적(業績)을 보면?

    1969년과 1973년 사이에 그는 베트남 전쟁(戰爭)을 종식(終熄)시키기 위해,

    북(北)베트남의 외교관(外交官)들과 비밀(秘密)스럽게 협상(協床)을 시도하였다.

    1973년에 미국(美國), 북(北) 베트남, 남(南) 베트남, 베트콩 사이에 휴전조약(休戰條約)

    인 이른바 파리 협정(協定)이 맺어졌다.

    그 공로(功勞)로 북(北)베트남 교섭인 레독토와 함께 노벨 평화상(平和賞)을 수상(受賞)하

    였다.

    그러나 그 조약(條約)은 종이 조각에 불과, 전쟁(戰爭)은 2년 더 계속됐다.

    (레독토는 노벨 평화상(平和賞) 거부)

    휴전조약(休戰條約)이 지켜지지 않고 북(北) 베트남(베트콩)이 남(南) 베트남을 공격하여

    1975년 남(南) 베트남(월남)은 패망(敗亡)하여 공산화(共産化)되었다.

    레독토가 노 벨 평화상(平和賞) 수상(受賞) 거부를 한 것이야말로 평화협정조약(平和協定條約)

    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암시(暗示)였던 것이다.

 

    당시 한국(韓國)도 북한(北韓)이 남침(南侵)을 할까? 하는 염려가 많았었다.

    노 벨 평화상(平和賞)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國際的)인 큰 공(功)을 세웠는데 협정서(協定書)

    는 휴지조각보다 못한 모순이 되었으니 어찌된 일인가?

    그토록 긴 여정(旅程)과 끈질긴 협상(協床)이 결국은 휴지조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던가?

 

    1973년 계축(癸丑)년.

    베트남 전쟁(戰爭)을 종식(終熄)시키기 위한 파리(pari)회담 조약(條約)을 맺었다.

    이 회담을 시작한 시기는 1969년 계축대운(癸丑大運)이었고,

    4년 이상 협상(協床)기간이 지난 당시는 50세이고, 임자대운(壬子大運)이다.

    닉슨 대통령(大統領)이 베트남 전쟁(戰爭)에서 발을 빼려하는 실용주의(實用主義)로선(路線)

    을 택하는 것이어서 안보보좌관(安保補佐官)인 주인공으로서는 어느 정도 그 로선(路線)을 따

    라야 하고,

    실용주의(實用主義)가 바로 코앞에서 기다리는 임자대운(壬子大運)이므로 이러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주 庚子 월주 丁巳

                               대운 壬子   월건 丁巳

                               행년 癸丑

    1973년 계축(癸丑)년은 주인공 키신저에게는 보수주의(保守主義)의 정신(精神)이 강해지면서

    전쟁(戰爭)을 종식(終熄)시키려는 마음이 강하다.

    미국(美國)의 반공주의자(反共主義者)이면서,

    주인공의 사상(思想)이 보수주의(保守主義)로 향하는 마음은 의외로 강하여 전쟁(戰爭)을 종

    식(終熄)시키는 휴전조약(休戰條約)을 성사(成事)시키려는 강한 마음이다.

    따라서 포기할 줄 모르고 강하게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키신저가 반공주의자(反共主義者)이며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인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

    도 47세 이후 임자대운(壬子大運)에서는 사상(思想)이 실용주의(實用主義)로 변하게 된다.

 

    1973년 계축(癸丑)년에 휴전(休戰)을 하기 위한 회담 조약(條約)을 맺었다고 해도,

    이 1973년의 계축(癸丑)년 휴전조약(休戰條約)은 훗날 휴지조각이 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이

    있었다. 그 이유는....

    대운임자(大運壬子)와 1973년 계축(癸丑)년은 90%는 진보주의(進步主義)다.

    이러한 비율에서 미국(美國)의 사정에 의하면 반드시 휴전(休戰)을 해야 하는 불가피함이 있었

    다.

    그러니 진보주의(進步主義)와 보수주의(保守主義) 비율이 진보주의(進步主義)가 월등히 우세하

    니 이것은 당장 회담(會談)을 성사시키는데 목적이 있으면서,

    훗날 반드시 조약(條約)이 지켜져야 하고 전쟁(戰爭)이 끝이 나야 한다는 책임감까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주인공 키신저의 1973년 계축(癸丑)년의 운기(運氣)작용이다.

    이 회담(會談)을 성사시켜서 노 벨  평화상(平和賞) 수상(受賞)했다.

 

    원래는 보수주의(保守主義) 반공주의자(反共主義者)였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아마 그것은 청년기(靑年期)때는 살아가는 현실이 그러한 사상(思想)을 갖게끔 되었다고 볼 수

    가 있다.

    그것이 40대 중반까지의 계축대운(癸丑大運)까지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7세부터의 대운(大運)의 흐름으로 보면,

    임자대운(壬子大運)에서는 완전히 실용주의(實用主義)로 자리를 잡으면서 주인공 역시 이념

    적(理念的)인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의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따라서

    1973년 계축(癸丑)노 벨  평화상(平和賞) 수상자(受賞者)이지만,

    그의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이고 반(反) 인도주의적(人道主義的)인 행보(行步)로 인하여 가

    장 크게 비판받는 수상자(受賞者) 중 하나로 언급(言及)되는 인물(人物)이다.

 

    주인공

    보수주의(保守主義)나 진보주의(進步主義) 같은 특정 사상(思想)이나 이념(理念)에 얽매이지

    않고 자국(自國)의 이익(利益)만 추구하는 그의 성향으로 본다면 온건(穩健)하면서도 공화당

    (共和黨)의 색(色)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 정치(政治)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이자 보수주의(保守主義) 정치인(政治人)으로,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정부 시절 중요 관료(官僚)였으며,

    좋든 싫든 1970년대 미국(美國)의 외교(外交)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인물(人物)이다.

    그는 정의(正義)나 감정(感情)에 치우친 판단보다는 미국(美國)의 국익(國益)을 위한 판단을

    내렸지만, 이로 인하여 부정적(否定的)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특히 정치현실주의(政治現實主義)로 어떠한 이념(理念)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으로 인하여 정

    통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와 진보주의(進步主義)자 모두에게 비판(批判)받았다고 전해진다.

    

    왜 이러한 결과가 되었을까?

    초강대국(超强大國)인 미국(美國)의 정치(政治)에서 중요한 직위(職位)에서 일을 추구하다보

    면 다양한 국제질서(國際秩序)에 대처하는데 외골수로 정책(政策)을 펼 수도 없는 불가피성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大統領) 하(下)에서 백악관(白堊館) 국가안보보좌관(각료급)과 국무장관

    (國務長官)을 지낸 사람이다.

    이 두 자리는 보통 서로 다른 관료(官僚)들이 맡게 되어 있지만,

    키신저는 이 둘을 자기가 번갈아 맡게 됐다.

    1973 ~ 1975년에는 두 직책(職責)을 혼자 겸임(兼任)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당시 미국(美國) 외교정책(外交政策)의 전권자(全權者)였던 인물(人物)이다.

  

    주인공은 전통(傳統) 보수적(保守的) 정신(精神)의 인물(人物)이다.

    그러면서도 감각(感覺)은 뛰어난 특이할 정도의 비범(非凡)한 인물(人物)이며 다만 전통(傳

    統) 보수적(保守的)인 성향이 조건에 의하여 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인공의 팔자(八字)에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변한다는 조건은 대운(大運)에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의미한다.

    사람의 감정(感情)과 심리(心理)는 간단하지 않아서 짧은 순간에도 수없이 반대의 심리(心理)

    가 오가는 반복을 하게 된다.

    즉 보수주의(保守性)의 심리(心理)에서 진보성(進步性)의 심리(心理)로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팔자(八字)의 특성과 대운(大運)의 특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매년의 행년 운기(運氣)가

    또 작용하므로 복잡함이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으니 이러한 경우 협상(協床)을 주도하는 입

    장이면 질질 끌게 된다.

    어느 협상(協床)이나 불문하고 실무자(實務者)의 판단이 가장 우선하고 중요하다.

    주인공이 1973년 - 1975년 3년간 미국(美國)의 두 중요한 직책(職責)을 겸직했다는 것이야 말

    로 지금에서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직책(職責)이라는 것은 미국(美國)이라는 초강대국(超强大國)에서 국제질서(國際秩序)

    를 바로 잡거나 관여하는 그 비중이 큰 것인데 안보보좌관(安保補佐官)과 국무장관(國務長官)

    을 겸임했다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권력(權力)에서는 위험한 게임이다.

 

    바로 이 시기는 주인공임자대운(壬子大運)이라는 보수주의(保守主義)와 실용진보주의(實

    用進步主義)가 충돌하는 시기이므로 순간 순간이 매우 곤혹스러운 정신적(精神的)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자서전(自書傳)에서도 이 시기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시간(時間)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1972년은 임자(壬子)년이다.

    베트남 전쟁(戰爭) 종식(終熄)을 위한 회담(會談)이 긴 여정(旅程)속에서,

    1972년 임자(壬子)년에는 바로 주인공은 외모로 보기에는 정상이지만 정신(精神)은 아마도

    공중에 뜬 기분에서 회담(會談)을 하였을 것인데 그래서 월남(越南)이 받을 준비가 전혀 되

    어 있지 못한 조건에서도 무조건 협상(協床)을 맺어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 월남(越南)에 그 많은 잉여무기(剩餘武器)를 넘겨 주고 급하게 빠져나오지만,

    바로 월남(越南)은 베트콩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월남(越南)은 그 당시 미군(美軍)의 잉여무기(剩餘武器)를 넘겨받으니 아시아에서 갑자기

    군사적(軍事的)으로 강대국(强大國)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었다.

    그러나 그 무슨 사치스런 말인가?

    미군(美軍)이 빠져나가 버린지 2년 만에 북(北) 베트남에게 손 들어버린 것이다.

    그 후 대학살인 킬링필드가 있었다는 말이 나왔으니 나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

    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사는 상대성(相對性)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하는 말을 아마도 북(北) 베트남이 잘 활용

    했을 것이다.

    또 주인공 키신저의 사주(四柱)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종교(宗敎)니 미신(迷神)이니 하는 식(式)의 말을 하지만 자국(自國)의 이익(利

    益)을 위하고 절체절명의 긴박한 순간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활용을 해야 한다.

 

    당시 호치민이 이끌었던 북(北) 베트남은 전략적(戰略的)으로 유리(有利)한 위치에 있었고

    미국(美國)과의 협상(協床)을 거부했는데,

    미국(美國)으로서는 아무리 전술적(戰術的)인 승리(勝利)를 거두어도 답(答)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조급한 것은 미국(美國)이었다. 즉 시간(時間)은 북(北) 베트남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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