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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편지<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명리와 육임을 병행하는 상담 이야기

 

 

                                                    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팔자를 논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명리학적, 육임학을 병행하여 상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주

             1917년 음 930

            戊  庚  辛  丁

            寅  申  亥  巳

                            2

        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프로필

    1. 1917년 음 930일 구미에서 출생.

    2. 19791026일 저격 사망.

    3. 1936丙子- 결혼 - 1950庚寅년 이혼.

    4. 193711월 첫 딸 박 재옥 출생. 2020 7884세 사망.

    

   1). 가난한 농부(農夫)인 박성빈(朴成彬)과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2 녀의 막내로 태어

       났다.    

       1936丙子20세의 나이로, 신부(新婦)는 17세의 나이로 혼인(婚姻)을 하였다.

       주인공의 부친(父親)과 - 신부(김후남)의 부친(父親)이 절친하여 서로가 합의(合意)하여

       혼인(婚姻)을 결정을 하였다. 당시의 풍속(風俗)으로는 흔한 일이다.

       혼인(婚姻)의 인연을 보면?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己 酉 월주 辛 亥

                               행년 1936 20丙 子

      20세의 나이 丙子년에 혼인(婚姻)을 하였다.

      이 해는 주인공 자신의 의사(意思)와는 관계없이 혼인(婚姻)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이

      혼인(婚姻)주인공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고,

      오히려 이 丙子년은 자신의 가는 길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러

      나 당시에는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상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부모(父母)가 정하면 그대로 따라갈 뿐이다.

      부모(父母)에게 감히 이견(異見)을 말할 수가 없는 시대인 것이다.

      이견(異見)을 말을 한다는 것이 큰 불효(不孝)인 것이다.

      이 혼인(婚姻)을 받아드리면서도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많은 위축되었을 것으로 볼수가 있다.

      부모(父母)님에게 효도(孝道)를 하기 위하여 이견(異見)을 달지 않고 일단 받아드리면서도...

      불편한 정도는 크게 실망을 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오행(五行)의 작용을 설명하면, 강력한 식신(食神)의 기운이 관성(官星)을 파괴하

      므로 정신적(精神的)인 충격이 큰 것이며,

      장도(長途)의 길에 큰 방해가 된다는 인식(認識)을 하게되는 혼인(婚姻)이 된다고 본다.

      더구나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이 겹치게 되면 여자()에 대한 관심도는 거의 50% 이하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이 겹치게 되면 남자(男子)의 팔자(八字)에서

      는 무엇보다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한 여자(女子)의 남편으로서 여자()를 보호하고 지켜

      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이 겹치게 되면 기분에 좌우되고 그때 그때 재미로 사는 것

      처럼 인생(人生)의 무게가 없어서 반드시 훗날 다른 여자(女子)에게 인연이 되는 것을 암시

      (暗示)한다.

 

      그러한 시작이 되면서도 대운(大運)에서 비견(比肩)의 정신(精神)은 웬만하면 기가 약해지지

      않는 강한 힘이 발동되는 장점(長点)이 있어서 결혼(結婚)을 유지하는 힘은 바로 쉽게 물러

      서지 못하는 강한 정신(精神)과 인내력(忍耐力)이 작용하는,

      기유대운(己酉大運) 무신대운(戊申大運)을 무사하게 지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정()이 있을 리는 없다.

 

   2). 193721. 정축(丁丑).

      대구사범 대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소학교 (聞慶小学校 - 국민학교)에서 3년 간 교직(教職)

      몸담았고,

      일본인(日本人) 시학관(侍学官지금의 장학사)과 자주 충돌해 스스로 결국은 사직(辞職)

      다.

       주인공52녀의 막내로 태어났으나 운명적(運命的)으로 장남(長 男)의 역할을 하는

          팔자(八字).

          가정환경(家庭環境)은 가난하였으나 유소년기(幼少年期)때부터 순수한 마음으로 스스로

          에게 성실(誠実)하게 성장하는 꿋꿋하고 강한 정신(精神)을 준비하게 된다.

          청소년기(青少年期)로 접어드는 12세 이후에는 선량(善良)하고 인성(人性)이 좋은 소년

          (少年)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근면(勤勉)하고 성실(誠実)한 자세로 흔들림이 없고,

          동요(動揺)함이 없는 청소년(青少年)으로 변하면서 성장을 한다.

          다만 이 시기에서 성장속도는 느린 편이다.

          주인공은 이 시기에서 성장속도가 활발하지 못하여 단신(短身)에 속한다.

          비교적 인정(人情)이 많은 마음이면서도 자존감(自尊感)이 강한 편에 속하는 편이다.

     이러한 정신(精神)이 스스로를 속이지 못하고 민족정신(民族精神)이 있어서 일제 강점기(強占

     期)속에서 교직(教職)에서 일을 하면서 강성(剛性)의 사상(思想)으로 인하여 교직(教職)을 사

     직(辞職)하는 것이다.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戊 申 월주 辛 亥

                               행년 1941 辛 巳

        행년 1941辛巳은 스스로 인내해야 하는데 강한 자존감(自尊感)이 허락하지 않으니

        인내력(忍耐力)에 한계(限界)가 있어서 위로 부터의 강압적(強圧的)인 압박에는 스스로에

        게 불명예(不名誉)가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사직(辞職)을 하는 것이다.

 

   3). 장래(将来)를 고민한 끝에 194226임오(壬午) 만주(満洲)에 있는...

       신경군관학교(新京軍官学校)에 입학(入学)2년 과정(過程)을 수석(首席)으로 수료(修了)

       한 다음, 일본(日本)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学校)에 입학(入学),

       1944갑신(甲申)우수(優秀)한 성적으로 졸업(卒業)하고 만주군(満州軍) 소위(少尉)

       로 임관(任官)했다.

        8·15해방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関東軍)에 배속되어 중위(中尉)로 복무 했다.

      주인공이 교직(教職)에서 사직(辞職)하고 장래(将来)를 고민하게 되 는 것은 좀더 크고

         넓은 공간(空間)으로 나가기 위한 마음이다.

         그것은 이미 미래(未来)를 향한 강력한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하고 현실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는 모험을 하게 되는 것이 194226임오(壬午)이다.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戊 申 월주 辛 亥

                                   행년 1942 壬 午

         행년 1942 壬午 년은 먼 미래(未来)를 위하여 오늘을 접고 고행(苦 行)을 각오하고 출

         발하는 마음이다. 1941辛巳은 강한 주관(主観)이 작용하는 것이면서 당시의 사정

         (事情)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면,

         1942 壬午 년은 미래(未来)를 만들기 위한 정신적(精神的), 육체적(肉 体的)인 어려움

         을 피하지 않겠다는 운명적(運命的)인 각오(覚悟)인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하는 순간 순간이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犠牲)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각오(覚悟)이며,

         기분으로 정해진 것이 아닌.... 이게 자신이 가야하는 길이라는 준엄(峻 厳)한 생각으

         로 결정한 것이다.

         주위 가족(家族)의 반대도 많았을 것이다.

         교육자(教育者)의 길이 있으면서도 굳이 미지(未知)의 길로 가는 것을 가족(家族)의 마

         음이 편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가 있을수록 주인공은 공인(公人)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각오(覚悟)가 더 강

         해지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돌파를 하게 되고 더 큰 장벽(障壁)이 있다고 해도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초인적(超人的)인 각오(覚悟)를 품게 된다.

         1942 壬午 년은 자신이 몸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도 좋다는 혼신(魂神)의 정신(精神)

         것이다.

         이러한 각오(覚悟)를 하게 되면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다고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는 배수

         (背水)의 진()을 치게 된다.

         이 길이 주인공에게는 정말 운명적(運命的)으로 루비콘 강()을 건너가는 것이다.

         세상사(世上事)가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는가? 하는 것이 마지막을 결정 하게 되는 것을

         주인공의 팔자(八字)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팔자(八字)에서는 한 가지 간과(看過)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정(家庭) ()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즉 사랑하는 처(), 토끼 같은 자식(子息)에 대한 단 한줄기의 연정(恋情)이 존재하지

         않는 심리(心理)가 있어서 오히려 현재의 편한 길을 포기하고 머나먼 길을 가게되는 동

         기(動機)인 것이다.

 

   4). 8·15해방 후 1946병술(丙戌)년,

       귀국(帰国)해 국군창설(国軍創設)에 참여했고,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

        제2기로 졸업하고 대위(大尉)로 임관(任官)했다.

        육군본부(陸軍本部) 정보국(情報局) 작전과장(作戦課長)으로 근무하던 중,

        32세 되던 1949기축(己丑) 여수, 순천 10·19사건을 계기로 군내(軍内) 공산주의

        자(共産主義者)와의 관련 혐의를 받고 군법회의(軍法会議)에 회부되어 사형선고(死刑宣告)

        를 받았다.

        그러나 동료(同僚) 장교(将校)들의 감형운동(減刑運動)으로 석방(釈放)되어 문관(文官)

        로 육군본부(陸軍本部) 정보국(情報局)에 근무(勤務) 하다가....

        6·25전쟁 이후 소령(少領)으로 복귀(復帰), 육군본부(陸軍本部) 정보국(情報局) 전투 정

        보과장(情報課長)을 지냈다.

        소령(少領)으로 복귀(復帰)되는 과정에서 군() 고위급(高位級) 장성(将 星) 사이에 그

        의 과거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와의 관련 사실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어서 복귀(復帰)

        어려움도 있었다.

       주인공1942 壬午 년에 군인(軍人)의 길을 택한 순간,

        이 길은 반드시 온갖 음해(陰害)와 불명예(不名誉)를 초래할 가능성과 심한 경우 신변(

        邊)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예고(予告)한 것이다.

        이것이 임오(壬午)의 운기(運気)작용이다.

        주위의 음해(陰害)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바로 32정미대운(丁未大運)으로 변화되는 흐름이 주인공에게는 큰 힘이 되고

        명예(名誉)가 되는 것이며,

        이 대운(大運)은 확실한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의 길이며 국가(国家)를 위하고 안전한 틀

        을 만들 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대운(大運)인 것이다,

        또한 힘있고 권력(権力)의 도움을 받고 즉 관운(官運)의 지원을 받는 것이니 국가(国家)

        충성(忠誠)하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인정(仁情)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순애보(純愛宝)의 정신(精神)으로 살아가는 기간이며,

        정당(正当)하고 정의(正義)로움을 추종(追従)하고 비리(非理)와 불의(不義)를 인정하지 안

        는 사상(思想)으로 살아가는 기간이다.

        이러한 대운(大運)기간에서 약삭빠른 짓이나 하고 권모술수(権謀術数)에 의존하는 삶을 살

        아가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정의(正義)와 상식(常識)과 인정(仁情)으로 살아가는 세월(歳月)이다.

        음해(陰害)에 의하여 군법회의(軍法会議)에서 사형선고(死刑宣告)를 받았으나 주위 장교

        (将校)들의 도움으로 석방(釈放)되었던 것도 대운(大運)의 덕()인 것이다.

     왜 그런 음해(陰害)를 받았는가?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戊 申 월주 辛 亥

                               행년 1947 丁 亥 . 행년 1948 戊 子 . 1949己 丑 .

        행년 1947 丁亥년은 매사에서 신변(身邊)주위에 흉살(凶殺)이 접근하여 으로 메주

        쒀도 의심을 받는 1947년 운기(運気)작용이다.

        바른 언행(言行)이 오히려 의심을 받아서 군인(軍人)으로서는 위험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매우 곤혹스럽게 보낸 한 해였을 것이다.

        행년 1947 丁亥년에 조금씩 분위기가 있었지만 주인공은 느끼지 못하고 안이(安易)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은 정당(正当)하면 된다는 극히 보통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행년 1948 戊子년이 되면서 안개가 드리우듯 더욱 확실하게 음해(陰害)

        를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대운(大運)과 행년(行年)이 위험한 함정(陥穽)에 빠뜨리겠다고 작정을 하는 해이

        다.

        주인공이 솔직한 생각으로 주위 사람들과 대화(対話)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음해(陰害)

        하려는 자()한 테는 좋은 먹이 감이 되었을 것이다.

        1949己丑년에서 재판(裁判)에 회부(回附)되어서 선량(善良)한 사람들 즉 정의(正義)

        로운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해인데....

        다만 이 사형선고(死刑宣告)를 받으면서 몇 달의 시간이 흐름에서 정미대운(丁未大運)

       으로 바뀌었음이 주인공에게는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경우가 된 것이며,

        천군만마(千軍万馬)를 얻음이 되는 것이다.

      시간(時間)의 조우(遭遇)가 얼마나 중요한가?

        백척간두(百尺竿頭) 절벽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회생(回生)하는 것인데....이러한

        대운(大運)에서 도움을 받고 회생(回生)한다는 것은 앞날에 긍정적인 신호가 된다.

        그러한 흐름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유는?

      195034경인(庚寅)년을 보면....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丁 未 월주 辛 亥

                                   행년 1950庚 寅.

                                   행년 1950庚 寅 년 운()의 작용을 보면....

        庚 비견(比肩)의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이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을 오고 가게 됨을 지키고 있는 것이 비견(比肩)

         이다.

         주인공이 믿고 의지할 수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그 당시 주인공을 구()해주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지위(地位)로 보면 아주 높은 자리에 있는 장교(将校)로 전해진다.

         여러 장교(将校)들이 구명운동(救命運動)을 해서 석방(釈放)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장

         교(将校)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고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마도 보증인(保証人)

         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높은 직위(職位)에 있던 구원자(救援者)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비견(比肩)의 작용이 절대적인데....선수(選手)는 선수(選手)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은인(恩人)의 역할을 한 구원자(救援者) 주인공의 숨통을 살려준 것이다.

         이 구원자(救援者)주인공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팔자(八字)의 속사정으로,

      군()의 사항이기 때문에 알기 쉽지는 않으나 주인공의 팔자(八字)에서 신해(辛亥)월의

      구성을 보면.... 남다른 촉()의 기능(技能)을 소유하고 있다.

      즉 느낌. 센서.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고 듣는 능력(能力)이다.

      즉 예지능력(予知能力)인데 육감(肉感)이라고도 한다.

      이 능력(能力)은 아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느낌, 센서의 능력인 월지(月支) 식신(食神)의 기능(技能)이다.

      자유자재(自由自在)로운 생각과 그 능력(能力)이 계속 지속적(持続的)으로 능동적(能動的)

      으로 작용하는 것이 발효식품(醱酵食品)처럼 계속 활성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의 팔자(八字)에서 능동적(能動的)인 느낌을 소유하면서 그 능력(能力)이 쓰이는 범

      위에 따라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게 되는데 국가(国家)의 중요 직책(職責)에서 일

      을 하는 입장이라면 큰 그릇의 인물(人物)이 틀림없다.

 

      다만 이 정보능력(情報能力)이 혹은 어쩌다가 남용(濫用)된다면 그 후유증(後遺症)이 나타

      나게 되는 것인데 이 후유증(後遺症)은....

      1949己丑년에서 주위 불량(不良)한 사람들에 의하여 역이용(逆利用)당했을 것으로 보이

      는데 주인공의 부주의(不注意)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주인공의 능력과 목적이 매우 순수하고 정의(正義)에 조

      금도 어긋남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자신을 지켜주는 핵심(核心)인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팔자(八字)에서 중요한 자리에 재물(물질)이 없었기 때문인데 만약

      재물(물질)이 있었다면 사심(私心)이 있어서 항상 이해관계(利害関係)가 연결되어서 처세

      (処世)에서 집중력(集中力)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능력(能力)이 적당하게 잘 활용된다면 큰 그릇의 인물(人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能力)은 지도력(指導力)이 되고 통솔력(統率力)이 된다.

      주인공이 훗날 경제계획(経済計劃) 5개년 계획(計劃)으로 강한 드리이브를 걸고 오직 경

      제(経済)를 외치면서 수출(輸出)을 주도하면서 속도감(速度感)있게 대한민국(大韓民国)

      경제(経済)를 발전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느낌의 소유자(所有者)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인(庚寅)이 지키고 있음으로서 뒤는 걱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

      다. 즉 혹시나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말끔하게 제거해주는 것이다.

 

      필자(筆者)19세 되던 해 년말(年末)쯤에 서울 중요한 거리에....

      (가령 남대문 교차로)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이라는 큰 글자로 광고(広告)를 하였던 기억

      이 있는데 그때 그 시절의 그 숫자는 정말 환상적(幻想的)인 의미의 글자였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기록으로는 1950庚寅년 이혼(離婚)을 하였다고 한다.

      이혼(離婚)을 하기는 했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인공의 마음에서도 무척이나 아픔이 있었을 것이며 가슴속을 베어내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 시기에 새로운 가정(家庭)의 시작은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처럼 오행(五行)의 작용은 순간 순간 작용하는 목적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어서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을 미견(未見)의 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5). 한국전쟁(韓国戦争)이 종전(終戦)되는 1953계사(癸巳).

      준장(准将)으로 진급(進級)했으며 육군포병학교, 2군단 포병사령관, 5사단. 7사단장,

      1군 사령부 참모장(参謀長), 6관구 사령관, 육군군수기지사령관, 1관구사령관, 육군

      본부 작전참모부장, 2군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이 기간은 정미대운(丁未大運)에서의 운기작용(運気作用)이다.

 

   6). 1961신축(辛丑)

     육군(陸軍) 소장(小将)으로 제2군 부사령관(副司 領官)에 재직(在職)중에 "어려움에 지쳐 있

      는 조국(祖国)을 구()하고 도탄(塗炭)에 빠진 국민(国民)과 민생고(民生苦)를 시급히 해결

      하겠다" 는 혁명공약(革命公約)을 내걸고,

      청년장교(青年将校)들과 함께 5. 16 군 사혁명(軍事革命)을 주도했다.

      1961신축(辛丑)의 일은 병오대운(丙午大運)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42- 52세 병오대운(丙午大運):

      관성대운(官星大運)으로 명예(名誉)를 생명(生命)으로 하는 군인(軍人)의 입장에서는 큰 공

      ()을 세우거나 진급(進級). 승진(昇進) 등... 의 기간이다.

      그런데 보이는대로(예상했던) 나타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인공은 이 기간 동안 고민(걱정)

      난관(難関)이 많아지게 된다.

      군인(軍人)의 신분(身分)으로서 국가(国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되면서 현재 시대적(

      代的)인 상황에 대한 고민이 나름대로 걱정을 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면서 나의 모든 것을 걸

      어야 한다는 숙명적(粛命的)인 생각으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본다는 것은 실수(失手)하면 끝이라는 것을 각

      오(覚悟)한 것인데 실패(失敗)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행(決行)을 한 모험(冒険)

      인 것이다.

      또한 이 기간에서는,

      개인적(個人的)으로는 자신에게 언제나 비수(匕首)가 날아온다는 위험 또는 가능성이 있고,

      국가(国家)를 통치(統治)하는 통치자(統治者)로서는 국제관계(国際関係)에서 공격(攻撃)

      당하는 일이나,

      대한민국(大韓民国)의 국가적(国家的) 위상(位相)의 절대적(絶対的)인 문제(問題), 결정(

      定)....등의 난제(難題)들이 늘 있게 되고,

      신변(身邊)의 직접, 간접적인 문제(問題)가 다사다난(多事多難)한 기간이 된다.

      국제적(国際的)으로는 미국(美国)과의 관계에서 베트남 전쟁(戦争)에 참가할 것인가? 하는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가는 그 당시 국가(国家)의 명운(命運)을 걸고 결정해야 한다

      고.... 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야당(野党)과의 한치도 양보 없는 대치(代置)국면 등....국내 정치(政治)에서도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며 급기야는....

      1968121일 북한(北韓)의 특수부대(特殊部隊)가 서울 청와대(青瓦台)를 기습공격(奇襲

      攻撃)시도사건이 있었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한 밤중에 서울의 종로(鐘路) 한 중앙 복판까지 북한(北韓)의 특수부대

      (特殊部隊)가 나타난 사건(事件)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事件)이었고,

      만약 청와대(青瓦台)를 기습(奇襲)하여 완전히 폐허(廃墟)로 만들었다면 국가(国家)의 통치

      권력(統治権力) 1번지가 통째로 공중분해(空中分解)되는 것이며,

      그 이후의 일은 상상하기 불가(不可)한 것이다.

      이 사건(事件)이후 바로 향토예비군(郷土予備軍)을 창설(創設)하게 되었다.

 

     1968121일 북한(北韓) 특수부대(特殊部隊)의 기습사건(寄襲事件)을 보면...

      이 사건(事件)은 이른바 김 신조 31명의 특수부대(特殊部隊)인 것이다.

      김 신조는 그 당시 생포(生捕)되었고 대한민국(大韓民国)에서 결혼(結婚)도 하였고 기독교

      (基督教)인 되었다.

      이즈음 국가안보(国家安保)는 안이(安易)한 자세로 있었다는 것이 1967丁未년의 운기작

      용(運気作用)으로 알 수가 있다.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丙 午  월주 辛 亥

                              행년 1968121戊 申 .

     1968戊申121일은 운기로 보면 1967丁未년의 운기작용(運気作用)이 된다.

     1967丁未년의 운기작용(運気作用)은 무엇보다 편한 생각으로 큰 경계심(警戒心)이 부족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 즈음 베트남전쟁에 파견되었던 국군(国軍)이 철수를 하는 일도 겹쳐진 시기였고,

     또한 운기(運気)의 작용으로 보면 역학(易学) 전문용어(専文用語)로서 분석해보면....

     ()의 침범이 있는지를 감시(監視)하고 경계(警戒)를 하는 것이 식상(食傷)의 기능이고

     이 기능이 약해지게 되면 경계(警戒) 또는 감시(監視)가 느슨해지고,

     전쟁(戦争)이나 평화(平和)를 지키려는 기강(紀綱)이 해이해지는 것이다.

     바로 1967丁未년의 운기작용(運気作用)이 이러한 것이다.

     마음 편하게 긴장(緊張)을 풀고 느긋하게 지내게 되는 것이 丁未년의 인성(印星)의 작용

     이 되어서 식상(食傷)의 기능을 저하(低下)시키는 것이니...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므로 군()의 기강(紀綱)이 약해지는 것이다.

     또한

     1968년은 戊申년이다. 그러나 1967丁未년의 운기(運気)가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기간이다.

     편안하게 지내던 분위기에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을 치듯이 깜짝 놀라는 일을 당하는 경우와,

     자신의 권력(権力)과의 암투(暗闘), 정치(政治) 권리(権利)에 해당하는 일에서는,

     잘 풀리지 않는 1년의 기간인데 조금씩 순서대로 하나 하나 풀어간다면 목적하는 일은 가능한

     데....다만 이러한 것을 이루려는 과정에서는 번잡하고 복잡한 것을 피하게 되고 단순한 것을

     선호(選好)하면서 이러다 보니 왠지 급한 마음이 되면서 인정(人情)이 메마르게 된다.

     즉 일방적이고 자기 중심적이 되는 것이므로 주위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

     는 것이다.

     통치자(統治者)의 입장에서는 아래 사람들이 거의 다 알아서 하게 마련인데도 이 당시 복잡한

     국내외(国内外) 정치상황을 주인공은 심리적(心理的)으로 피로함으로 지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968121일 사태(事態)가 발생한 것이다.

     필자(筆者)의 기억으로는 자정(子正)을 기준으로 야간(夜間) 통행금지(通行禁止)시대였는데

     특수부대(特殊部隊)가 종로(鐘路) 5(?)에 출현(出現)하여 경찰(警察)의 검문(検問)을 받고

     발포(発砲)를 하여 총()소리가 적막(寂寞)을 깨고,

     그 와중에서 종로(鐘路) 경찰서장(警察署長)이 교전(交戦)에서 순직(殉職)한 것으로 기억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청와대(青瓦台)와 그 일대 비상(非常)이 걸린 것이다.

     추운 겨울 철, 엄동설한(厳冬雪寒)의 시기에, 북괴군(北怪軍) 특수부대(特殊部隊)는 이 길로

     도주(逃走)하기 시작하여 양주(楊洲)에 있는 노고산을 지나 임진강 쪽으로 도주하다가 거의

     사살(射殺)되고 1명 정도는 월북(越北)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은 국내외적(国内外的)으로 엄청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대한민국(大韓民国)의 안

     보(安保)가 새로운 이정표(里程標)를 세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듬해 1968 戊申년은 미래(未来)를 위한 안보(安保)의 새로운 이정표(里程標)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안보(安保)에 집중하게 되고 아주 강하고 단단하게 뭉

     쳐진 집단(集団)이 된다.

     그것이 1968 戊申년의 흐름이다.

     대한민국(大韓民国)60만 대군(大軍)도 강력하지만 향토예비군(郷土予備軍)은 더욱 강하다

     는 설()도 있어서 적()이 더 겁을 낸다는 말도 있다.

     주인공은 통치자(統治者)로서 대통령(大統領)으로서 경제적(経済的)인 먹고사는 문제와 정치

     문제(政治問題), 안보문제(安保問題) ....의 현실의 어려움 속에 속히 완성해 놓아야 한다

     는 절박함이 있어서 강한 드라이브를 걸게 되었을 것이다.

 

     병오대운(丙午大運)을사대운(乙巳大運)의 시기에서 중요한 정황을 정리해 보면...

     1967丁未7월 제6대 대통령 재선.

     1968戊申121. 북한 특수부대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

     1969己酉1017일 [3선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모색.

     1970庚戌년 와우아파트(시영아파트) 붕괴사고.

     1971辛亥년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조국근대화"라는 기치를 걸고 "근면. 자조.협동"의

     정신과 국민 개개의 생활 향상, 자유로운 성장은 물론이고 국가의 발전과 중흥을 이룩하기

            위한 사회혁신운동을 내세웠다.

     1972壬子년 [7. 4 남북공동성명]

     1973癸丑년 "6. 23선언" 이라 불리는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대통령 특별성명"

     을 발표함.

     북한측의 태도의 변화와 국내사정으로 말미암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 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

     었다.

     박 정희 대통령(大統領)의 인생(人生)에서 또 하나의 큰 사건(事件)이 있다.

     1974甲寅8151023분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광복절 기념행사.

     육영수여사 피격 사망사건 발생.

     19741019일 문 세광 사형확정. 3일 뒤 사형집행.

     1979己未년 복잡한 국내 정치의 상황에 따른 "부마사태"에 직면하였다.

     1979己未1026. 김재규의 중앙정보부장의 계획에 의한 시해사건(弑害事件) 발생

     10. 26사태 발생.

 

      중요한 사건.

     육 영수여사 피격사건(被撃事件)을 분석한다.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乙 巳 월주 辛 亥

                            행년 1974甲 寅 .

      광복절(光復節) 기념식장에서 문 세광이 쏜 총탄에 희생을 당했다.

     박 정희 대통령(大統領)의 팔자(八字)에서 보면 甲 寅이 모두 부인()에 해당하게 되면

     서, 이 부인()의 상황이 매우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으로서,

     그 것은 떠나가는 것과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인공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주게 되고 정신적으로 뿌리 채 흔들어 놓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결과는 한편으로는 정신적(精神的)인 문제에서 즉 사고방식(思考方式)에서,

     권위주의(権威主義)가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는 것므로 스스로가 더 낮은 자세로 임()

     지 않는다면 권위(権威)가 오히려 덫을 놓고 기다리게 되니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하

     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暗示)한다.

     갑자기 사고로 처()를 잃게 되면서 찾아오는 처()의 빈자리로 인하여 겪게 되는 충격은

     전체적인 정신(精神)조직을 흔들어 놓는 것이니,

     보통사람 이상의 혼란(混乱)스러운 상황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5년 뒤 1979 己未년 가장 믿는 중앙정보부장(中央情報部長) 김재규의 총탄

     에 시해(弑害)를 당하게 된다.

     김재규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한 말은 자기 합리화(合理化)를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건도 역시 주인공의 주위에 있는 믿거라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인데....

     비슷한 경우로 1968북한 특수부대 청와대 기습사건이 비교가 된다.

     그 해는 戊申년 보다 丁未년의 강한 힘이 작용하였고,

                 1979년은 己未년의 강한 힘이다.

     결론적으로 두 사건 모두 마음놓고 있다가 뒤통수 얻어맞는 꼴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1968 丁未년 과 1979 己未년은 글자는 같은데,

     즉 의미는 같은데 그 강도(強度)의 차이는 엄청 크다.

     그 차이는 주인공 대통령(大統領)을 지키는 경호(警護)의 힘의 차이인데,

     1968 丁未121일 북한 특수부대(特殊部隊)의 청와대(青瓦台) 기습사건(寄襲事件)에서는

     식상(食傷) 즉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보호벽(保護壁)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고,

     1979년은 己未년의 궁정동 시해사건(弑害事件)에서는 대통령(大統領)의 오른팔인 중앙정보부

     장(中央情報部長) 김재규의 기획(企劃)에 따라서 김재규가 총을 쏘는 소리에 따라서 정보부직

     원(情報部職員)들이 대통령(大統領)의 경호원(警護員)들을 모두 제거(除去)하여 완전하게 성공

     한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大統領)을 지켜주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大統領)의 팔자(八字)에서는 식신(食神), 상관(傷官)이라는 기능이다.

     이것이 왜 무너졌는가?

     강력한 권력(権力)이 후원(後援)으로 작용하는 을사대운(乙巳大運)에서

     1979년의 己未년에서는 권력(権力)을 소유하는 부하(部下)끼리는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데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서 믿었던 부하(部下), 잘 따르는 부하(部下)가 바로 역적(逆賊)으로

     변하여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2022 음 8월 8일.

      대통령(大統領)의 심리변화(心理変化).

         일주 庚申 월주 辛亥

                               대운 乙 巳  월주 辛 亥

                               행년 1974甲寅. 1975乙卯. 1976丙辰.

                                    1977丁巳. 1978戊午. 1979己未.

                                    1980庚申.

     1974 甲寅년 영부인(領夫人)을 문세광의 총탄에 잃고 갑자기 변한 주변환경의 영향에 한동

     안 혼란(混乱)을 겪게 된다.

     1975 乙卯년은 어느 정도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에 복잡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통치자(統治者)

     의 위치로 정상적인 회복(回復)이 된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더욱 튼튼한 통치자(統治者)의 기반(基盤)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면서 강한 권력(権力)의 아성(牙城)이 필요하다는 강한 집착(執着)이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강한 집착력(執着力)도 아침 생각과 저녁 생각이 다르듯이 얼마의 기간이 흐르면

     또 변화가 오게 되는 것을 암시(暗示)하는 것이다.

            권불십년(権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1976 丙辰년이 되어서는 차분하게 일상(日常)을 보내면서 정무(政務)는 정상적이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흐름을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즈음부터 대통령(大統領)은 통치자(統治者)의 입장에서 많은 국정(国政)을 소화(消化)

     기 보다는 점차로 자신의 권력(権力)을 가능하면 주위에 분산(分散)시키고 나눠 주어야 겠다

     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1977 丁巳년이 되어서는 인생(人生)은 새옹지마(塞翁之馬),

     권력무상(権力無上)함이라는 개념(概念)의 지배를 받게 된다.

     대통령(大統領)이 어느 누군가에게 속내를 말했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물러날

     때가 되어 가는 것이라고....

     권력자(権力者)가 권력(権力)을 내려 놓고 일선후퇴(一線後退)하겠다고 하는 것은 간단하면

     서도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그 권력(権力)이 어디로 향()하는가? 누군가에게 갈 것인가?

     지도자(指導者)가 지도자(指導者)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하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그 밑에

     있는 따르던 자()들은 공황(恐慌)에 빠지게 된다.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이것이 권력(権力)의 암투(暗闘)가 된다.

     대통령(大統領)이 누군가 가까운 지인(知人)에게 일선(一線)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속내

     를 살짝 드러내 보였다고 해도 그러한 극비(極秘)의 비밀(秘密)은 날개라도 단 듯이 어디론

     가 날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한 이치(理致)를 설명해 보면....

     1977 丁巳년에서 권력(権力)의 무상(無上)함을 느끼면서 이제 서서히 내가 갈 길을 내려가려

     고 하는 마음이 발동(発動)하기 시작할 때 이제 더 큰 문제가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이 해답을 얻으려고 앉으나 서나, 자 나 깨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막연한 생각이 발동(発動)할 뿐이다.

 

     1978戊午년은 1977년 丁巳 다음해가 되어서 무엇인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

     연하게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1978戊午:

     주인공 대통령(大統領) 자신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생각의 한계(限界)가 있게 된다.

     어떤 사정(私情)이 있겠는가?

     아주 소름이 돋도록 냉철해야 하는 판단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정작 본인(대통령)은 그러

     한 것에는 센서가 작동하지 않으니 과연 정상적으로 유지될까? ....

     센서가 작동하지 않아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최고 권좌(権座)대통령(大統領)인데?

     이즈음 대통령(大統領)은 너무 안이(安易)한 생각에 머물고 있었다.

     매사에서 긴장감은 없으며 어련이 알아서 잘 되어 가구 있겠지 하는 생각이 거의 지배를 하

     고 있어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듯이...

     바로 코앞에 있는 부하(部下)들이 서로가 잘 났다고 쌈박질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으며,

     그렇게 번뜩이던 섬광(閃光)같은 예측력(予測力)은 거의 먹통이 되어서 있다는 것이,

     1978戊午년의 현상이다.

     바로 권력(権力)이 눈을 멀게 하였으며 강력한 힘이 오히려 자신의 주위에 담벼락이 무너지

     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기역학(天氣易學)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탄함살(呑陥殺)이라고 한다.

     즉 죽고 죽이는 현상이 바로 나의 눈앞에서 있다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육감(肉感)이 거의 작동하지 못한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1979己未년이 된 것이다.

     천기역학(天氣易學)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탄함살(呑陥殺)이라고 하는,

     그 역적(逆賊)의 탄함살(呑陥殺)이 된 것이 1979己未년이 된 것이다.

     권력(権力)의 구조(構造)에서 만들어진 탄함살(呑陥殺)이 이렇게 큰 사고(事故)를 칠 줄은

     정말 예측불허(予測不許)한 것이다.

 

     1980庚申...

     위에서 1976 丙辰년이 되어서는 이 즈음부터 대통령(大統領)은 통치자(統治者)의 입장에서

     많은 국정(国政)을 소화(消化)하기 보다는 점차로 자신의 권력(権力)을 가능하면 주위에 분

     산(分散)시키고 나눠주어야 겠다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고 했는데,

     바로 1980庚申년에는....

     주인공 대통령(大統領)은 모든 권좌(権座)에서 벗어나면서 야인(野人)으로 돌아가는 해가

     된다.

    주인공 대통령(大統領)은 이 1980庚申년을 마음에 두었을 것으로 본다.

     팔자(八字) 운명(運命)의 작용에서 1980庚申년은 어찌 되었든 모든 것에서 손을 띠고 은

     퇴(隠退)를 하게되는 해이다.

     조금 더 자신의 신변(身邊)의 일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수비(守備)를 했더라면...

     1979己未탄함살(呑陥殺)에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1980庚申년에 정상적으로 은퇴(隠退)를 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 인생(人生) 새옹지마(塞翁之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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