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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편지<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명리와 육임을 병행하는 상담 이야기

 

 

                                                    사주팔자 이런 저런 이야기.

 

 팔자를 논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명리학적, 육임학을 병행하여 상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가수 (故) 장 덕의 팔자 이야기.

          1961421일 오후 ? 00.

   坤命   ?    甲   壬   辛    

         ?    申   辰   丑

                              대운 5  

              戊 丁 丙 乙 甲 癸

              戌 酉 申 未 午 巳

    부친: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

    모친: 클래식 음악 애호가 겸 서양화가(西洋画家). 사이에 중구 충무로4가에서 1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장 덕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자랐다.

           부모(父母)의 이혼(離婚)과 불우(不祐)한 유년기(幼年期)였는데, 주인공 장 덕이 초

           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1969己酉) 종교적(宗教的)인 이유와 성격적(性格的)

           차이로 인하여 불화(不和)가 심했던 부모(父母)가 이혼(離婚)하게 된다.

           이후부터 장 덕은 가까운 인척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오빠인 장 현은 아빠의 친구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아빠(부친)는 첼로리스트로서 지방공연(地方共演)을 떠나면서 가족(家族)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외로운 나날이 된다.

 

      15세까지는 계사대운(癸巳大運)이다. 이 대운(大運)에서는 주인공에게는....

      어린 나이에 호기심(好奇心)과 감수성(感受性)이 매우 예민한 소녀(少女)의 시기이며,

      운()의 작용에서도 마음속에 있는 동정(童情)의 세계를 무한히 여행하고 펼쳐 보이고 싶

      으면서 저 넓고 푸른 창공으로 마음껏 날려 보내고 싶은 순수(純粋)한 정신(精神)의 세계

      이다.

      여기에 더하여 부모(父母)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이인데 그러나 이 대운(大運)

      에서는 오히려 부모(父母)의 조건이 매우 나쁜 상황이 된다.

      어린 나이에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하기 엔 너무 이른 나이이고,

      세상사에 맞서기에는 너무 나약(懦弱)한 힘이다.

      이러한 시기에 보호해 줄 부모(父母)의 보호막이 너무 약한 것이다.

      유소년기(幼少年期)에는 부모(父母)중에서도 엄마가 있어야 한다.

      물론 부모(父母)가 다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父母)중에서도 엄마라는 존재

      (存在)는 절대적이다.

      이 절대적인 존재(存在)가 이 시기에는 없는 사정(事情)이 발생하여서 주인공이 더욱 마음

      이 시리고 외롭고 쓸쓸함의 분위기 속에서 있게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을 무기력

      (無気力)하게 만들게 된다.

 

      15세까지 계사대운(癸巳大運)은 꿈이 많고 미래(未来)의 세계(世界)를 향하여 나아가는,

      주인공의 운기(運気)의 작용에서 그 희망(希望)을 더욱 더 힘차게 자신감을 도와줄 모친

      (母親)의 존재(存在)가 보이지 않아서 주인공은 심리적(心理的)으로 침체(沈滞)하면서 이

      러한 과정에서 마음속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애처로운 모습이다.

      이러한 운기(運気)가 심하게 작용한다면 정신적(精神的)으로 피폐(疲弊)해지는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정신적(精神的)으로 이겨내기 어렵고 극복하기 어려운 기간인데 정상적인 가정(家庭)에서

      이러한 운기(運気)에서는 주인공, 체능(芸体能)의 가능성을 상상이상(想像以上)

      로 표현(表現)하는 능력의 소유자(所有者)가 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주인공은 부모(父母)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인척(친척)의 집에서 있었다는 것은

      주인공이 정신적(精神的)으로 침체(沈滞)하거나 의지력(意志力)을 밑바닥부터 소멸(消滅)

      키는 결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린 소녀(少女)가 얼마나 가족(家族)이 그립고 특히 엄마가 보고 싶었겠는가!!!!

 

      주인공, 장 덕10살 때(1970庚戌)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를 만나러 가다가 교통

      사고(交通事故)를 당해 약 2달 여간 병원(病院)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엄마가 병간호(病看護)를 해주었으니 비록 다쳐서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주인공, 장 덕은 어머니와 모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가 있어서 행복감(幸福感)을 느

      꼈다고 한다.

 

      1971辛 亥년 동양사상(東洋思想)과 철학(哲学)에 심취한 부친(父親)을 따라서,

      장 현 - 장 덕 남매(男妹)도봉산의 어딘가에 사찰()(불확실한) 비슷한 구옥(旧屋)

      서 1년 간 살게 되는데,

      그 집은 외부(外部)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인적(人迹)도 드문 곳이어서 이러한 조건에서 남

      매(男妹)는 학교(学校)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 장 덕은 오빠인 장 현에게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게 된다.

 

      이듬해 1972壬 子주인공, 장 덕은 오빠와 함께 부친(父親)을 따라 북한산(北漢山)

      딘가의 작은 집으로 이사(移徙)하게 된다.

      이 즈음부터 오빠는 일하려 나가기 시작하고 남의 집 가정교사(家庭教師)로 일하고 있었으며,

      부친(父親)은 매일 아침 나가서 늦은 밤에 귀가(帰家)하면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니...

     장 덕은 홀로이 남겨진 채 빈 집에서 쓸쓸함, 외로움과 싸우며 지냈다.

      그리고 부친(父親)에게는 새 어머니가 들어오게 되었고 감수성(感受性)이 남다르게 예민하여

      외로움을 많이 탔던 장 덕은 급기야 음독자살(飲毒自殺)을 기도(冀図)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1973癸丑)에는,

      주인공, 장 덕은 동요(童謠), 경연대회(競演大会)에 여러 번 나가서 자신이 실력을 뽐내게

      되고 1등 상(賞)을 받기도 하고 그리고 이 때부터 장 덕은 오빠가 준 기타로 어설프게나마

      음악(音楽)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며 작곡(作曲)을 시작하였다.

      당시 장 덕기타를 비롯해 피아노, 첼로, 등 다양한 악기(楽器)를 다룰 수 있었고,

      그림과 글짓기에도 재주가 능()했다고 한다.

 

      1974甲 寅, 14세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入学)장 덕은 사춘기(思春期)를 겪으면서 자신의 처지

      와 부모(父母)와의 외로움과 홀로 버텨야 하는 현실(現実)속의 생각에 우울(憂欝)해 하다가

      그 해 늦은 가을에는 한 장의 메모도 남기지 않고 무작정 대구에 친구의 집으로 내려가 10

      간 보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온 장 덕은....

      이내 수면제(睡眠剤) 10알을 먹고 음독자살(飲毒自殺)을 하는 극단적(極端的)인 선택을 시도

      한다. 두 번째의 시도이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장 덕의 어머니는,

      장 덕의 음악적(音楽的) 재능(才能)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고민을 한 끝에

      당시 인기를 끌고 있었던 미국(美国)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오빠 장 현장 덕 함께 남매(男妹) 듀엣을 결성(結成)시켜 주게 된다.

 

      1975乙卯, 15 

      4월에는 만 13(중학교 2학년)가 된 장 덕은 오빠와 함께 드래곤 래츠(Dragon Ret)라는

      듀엣 이름으로 통기타를 메고 미8군 주최의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라는 곡()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노래는 장 덕 작곡(作曲)의 첫 발표곡(発表曲)이었고 영문(英文)가사는 미8군 소속이며

      드래곤 래츠(Dragon Ret)를 초청해준 엘 클리나르 씨()가 붙인 것이다.

      또한 남매의 듀엣 이름 드래곤 래츠(Dragon Ret)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지인(知人)

      클리나드 씨()가가 붙여주었다.

     장 현 - 장 덕 남매(男妹) 듀엣은 이 공연(共演)을 통해서 출연료(出演料)도 얼마간 받았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CLUB)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Dragon Ret)의 노래와 함께

      미모(美貌)에 반했다는 평가를 들었으며 엘 클리나드 씨()를 통해서 출연계약까지 요청(

      請)받는다.

      그리고 이 무대(舞台)에서 장 현 - 장 덕 남매(男妹)는 얼마후에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게

      되니 스카우트되었으며,

      1개월 뒤(5) TBC TV의 청소년(青少年)과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 오라에 출연해,

      장 덕이 작사,작곡한 [일기장] - [꼬마인형]을 부르며 최연소(最年小) 남매(男妹)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드디어 데뷔하게 된 것이다.

      이후 장 덕은 작사(作詞), 작곡(作曲)에 능한 천재소녀(天才少女)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

      었다.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는 것은 처음에는 음악(音楽)이라는 것에 끌려서 무작정 몰입(没入)

      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운기작용(運気作用)에서 가능한 것이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1976丙辰),

      장 덕은 어머니에게 안양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처음엔 아직은 학교를 1년을 더 다녀야 졸업(卒業)을 하게 된다면서 극구 말렸지

      만 주인공, 장 덕이 하도 졸라대니 안양 예술고등학교에 찾아갔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와 이로 연예계(演芸界)에 데뷔한 후()라서 그 재능(才能)을 학교(

      校)측으로부터 인정받고 입학(入学)을 허락 받게 된다.

      정말 행운(幸運)이 작용한 것이다.

      그 해 4장 현 - 장 덕 남매(男妹)드래곤 래츠(Dragon Ret)에서 [이와 ]

      듀엣 이름을 순수한 한국이름으로 바꾸게 되었고,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반(친구야 친구)을 발표하고 영화에도 출연(出演)을 하는 활

      동을 하게 된다.

      특히 임예진 - 이덕화 - 전영록 주연(主演)의 영화(映画) (푸른교실)에서 이 영화(映画)

      서는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된다.

      이렇게 남매(男妹)는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또한....

      1977丁巳5 장 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移徙)를 하였고,

      1978戊午4장덕(2)은 당시 그녀는 10여 편의 영화(映画)에 주연(主演) 또는

      조연(助演)으로 출연하는 바쁜 나날을 보냈고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Pan)들의 사인 요청

      이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 오빠 장 현은 오라오라에 출연(出演)했을 때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作詞家)였던 천 0 씨의 딸, 천 0 0 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結婚)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장 덕은 결혼(結婚)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9己未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국인(美国人)과 결혼(結婚)하며 미국(美国)으로 이민(移民)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 현 - 장 덕을 불러 유학(留学)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이가 고등학교를 졸업(卒業)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 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 현은 이미 천 0 0 과 결혼(結婚)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 현과 천 0 0 과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結婚)한 사실

      에 실망하게 된다. 아들의 결혼(結婚)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 서로가 연락조차 단절되어 있어서 아들이 결혼을 한 것조차 알지 못할 정도가 되

          었다면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원한 사이가 되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가정이라고 하

          는 것은 무리다.

      어머니는 장 현이 가수(歌手)로서 성공하면서 자식(子息)을 부양(扶養)할 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結婚)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매번 그것을 장 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이 즈음 장 덕은 가요제에서 수상하고 그 해 10장 덕은 오빠 장 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

      방(月貰房)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혈관)을 끊고 또다시 자살(自殺)을 기도한다.

      세 번째 자살(自殺)기도다.

      자살(自殺)기도가 빈번하니 정신적인 기반이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

 

      이 사건 이후 장 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 해 초 미국인(美国人)과 결혼(結婚)하며 미국(美国)으로 이민(移民)을 가서 살고있던 친

      어머니는 딸 장 덕의 자살(自殺)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한 흐름에서,

      2년전에 미국인(美国人)과 결혼(結婚)하며 미국(美国)으로 이민(移民)가 살고 있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 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훨씬 지난...

      1979己未9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 덕의 자살(自殺)소동 기사(記事)

      접하게 되고 충격을 받아 장 덕을 간곡히 불렀다.

     장 덕은 어머니의 부름에 계속해서 응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새어머니가 장 덕을 짝사랑

      하던 정치계의 유명한 사람의 아들을 소개하려고 하여 이를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

      던 주인공이라서 서둘러 도망치듯 한국(韓国)을 빠져나가 어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美国)

      테네시주의 내쉬빌로 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 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대학 음악과

      (音楽科)에 입학(入学), 대학생활(大学生活)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 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내쉬빌 한인회(韓人会)가 주최하는 송년(送年)파티가 있었다.

     장 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韓人会) 회장(会長)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한인사회(韓人社会)에 딱 하나 있는 밴

      드(Band)가 실력이 부족해서 곤경에 처해 있다며 그들을 도와달라고 장 덕에게 부탁한다.

      그 밴드(Band)의 이름은 '리 패밀리'로 실제 형제(兄弟)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家族)

      드(Band)였다.

      장 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권해서 결국은 승낙한다.

      1981辛酉장 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대학 음악과(音楽科)를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実用音楽科)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音楽)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장 덕은 같은 리(Lee) 패밀리(family)의 일원이자 자신을 아껴주는 이 승언

      과 결혼(結婚)을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한다.

      당시 어머니는 결혼은 "감옥생활 같은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대학 졸업 후

      에 결혼하라고 충고했지만,

      장 덕은 미국(美國)에 온지 1년만인 1981辛酉1017일 내쉬빌에서 이승언과 결혼한

      다.

      그리고 리(Lee) 패밀리(family)의 일원으로서 한인회(韓人会)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

      다.

      밴드(Band)에서 장 덕은 퍼스트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며 음악적 리더(Leader)역할을 하였

      다.

      그러나 이즈음 그녀는 서울에서 가수 생활의 추억을 점점 그리워 하기 시작했고 고향에 대

      한 향수병(郷愁病)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전자 포커게임으로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을 다 날

      리기도 했다.

      고국(故国)의 향수병(郷愁病)에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1983癸亥 10월 이혼(離婚)

      을 하게 된 장 덕은 가수(歌手) 생활의 추억과,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등으로 고국(故国)에 대한 향수병(郷愁病)에 걸

      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韓国)으로 귀국하여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기타를 튕기면서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

      간(空白期間)을 가졌다가 성인(成人)이 되어,

      복귀(復帰)하면서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演芸界)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어서....

      장 덕은 혼자서 가슴으로 힘들어 한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장 덕 본인을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장 덕은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食飲)을 전폐(全閉)

      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呻吟)하게 된다.

      방송국(放送局)에서 출연 섭외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

      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 이[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

      빠 장 현1985乙丑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동생 장 덕에게 이와 이의 재결성(再結成)을 제안하게 된다.

 

      1985乙丑6장 현 - 장 덕 남매(男妹)7년 만에 재결합(再結合)하였다. 그러나

      1986丙寅6월 오빠 장 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音楽世界)가 달랐던 데다가 솔로로서

      의 욕심이 생긴 장 덕은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사랑해줘요 -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1987丁卯7장 덕은 정규 4집을 발표한다.

      [가요톱10] 등에서 순위권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장 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는다.

      1988戊辰9월,

                     장 덕은 다른 싱어송라이터 들과 함께 작업하며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1989己巳2월,

                     오빠 장 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일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장 덕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여의도에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

                     립한다.

     장 덕의 새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을 때였던..

      1989己巳618일,

                           장 현은 국립의료원에서 충격적인 설암(舌癌) 3기 판정을 받는다.

      병원(病院)의 의사(医師)장 현에게 지나친 음주(飲酒)와 흡연(吸煙)이 병()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면서,

      의 절반을 자르면 5년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1년 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하였으나,

     장 현은 수술을 하면 말을 할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고

      자가요법을 택하게 된다.

      암()발병 사실을 혼자만 알고 숨기려던 장 현은 결국 앨범 작업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장 덕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혔고,

      장 덕은 자신의 일에 신경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고 여기며 오빠에 대

      한 죄책감(罪責感)을 가지게 된다.

 

      앨범 활동 중, 오빠 장 현이 설암(舌癌)으로 발병하게 되자 장 덕은 활동을 중단하고 오빠

      의 병간호(病看護)를 하게 된다.

      오빠 장 현이 설암(舌癌)으로 쓰러지고 가수(歌手)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病看護)

      를 하던 장 덕은 점점 수면제(睡眠剤)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이며 무기력하고 심한

      우울증(憂欝症)에 시달리게 된다.

      1990庚午120일,

                            장 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

                            (出演)하는데 이것이 장 덕이 대중(大衆)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

                            다.

 

      1990庚午24일 오전 250분쯤.... 주인공 장 덕은,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1008호 자신의 방에서 다량의 수면제기관지 확장

     제 등 약()을 동시에 복용(服用)한 후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呻吟)중이었는데,

      의상(衣裳) 담당 0 0 씨가 발견하고 장 덕의 부친(아빠)에게 연락하였고,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약물(薬物) 동시 투여(투약)에 따른 상승작용(相乗作用) ,

      약물(薬物) 상호작용(相互作用)에 의한 쇼크로 운명(殞命)하고 말았다.

      그녀의 나이는 항년 30(28)이였다.

      그 후에....

      설암(舌癌)으로 시한부(時限附) 삶을 살고 있던 장 현7월 중순경 병세(病勢)가 악화(

      化)돼 경기도 소재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人工呼吸)으로 연명(延命)했지만 816일 오후 420분 경 아내와

      아들 을 남겨둔 채 엄마(모친)가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

      았다.

 

      여기서 부터는 장 덕의 짧은 삶의 운기(運気)의 작용을 분석해 본다.

     일주 甲申 월주 壬辰

                           대운 癸 巳   월주 壬 辰

     행년 1969己 酉. 부모(父母)가 이혼(離婚).

          분석주인공의 뜻과는 관계없이 주위의 조건이 만들어지는데 주인공에게는 매우

                곤혹스럽고 어려운 현실로 나타나는 운기(運氣)다.

                전문용어(專文用語)로 신약(身弱)한 주인공의 팔자(八字)에 관살(官殺)의 기

                운이 강하게 모여들면 싫고 좋고 를 떠나서 강제적(强制的)으로 다가오니 받

                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아쉬움이 무척이나 많은 상황이다. 정말 헤어지기 싫은데....이 여운(餘韻)이

                주인공의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서 깊은 상처(傷處)가 된다.

                현실은 곧 고통(苦痛)이 된다.

 

    장 덕10. 1970庚 戌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를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당한다. 이하동일....

         분석: 주인공은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당하는데 조심을 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즉 급하게 서둘렀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즉 엄마가 보

               고 싶어서 만나려고 하는 장소(場所)를 가는데 급히 서두르면서 마음이

               급하여 지켜야하는 법(法) 또는 질서(秩序)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사고(事故)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인데 필연(必然)이다.

               장 덕이 마음이 벌써 엄마에게 가 있으니 주의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또 주인공 장 덕은 그동안 엄마에게 할 말도 많고 무엇인가 엄마에게 줄

               것이 많았을 것이다. 조금 더 주의를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여기서 한가지 오행(五行)의 작용은,

        대운(大運) 식신(食神)에서는 행년(行年) 에는 식신(食神)이 되니,

        으로 식신(食神)으로 작용하므로 매우 서두르는 모습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인공에게는 지켜야하는 교통법규(交通法規)이다.

        이 교통법규(交通法規)가 무력해지므로 사고(事故)의 위험이 있는 것이다.

 

    행년 1971辛 亥.

    장 현 - 장 덕 남매(男妹)도봉산의 어딘가에 사찰() 비슷한 구옥(旧屋)에서 1년간

                 살게 되는데,

    행년 1972壬 子.

    주인공 장 덕은 오빠와 함께 부친(父親)을 따라 북한산(北韓山)어딘가의 작은 집으로 이사

                 (移徙)하게 된다.

    행년 1973癸 丑.

    주인공 장 덕은 동요(童謠), 경연대회(競演大会) 에 여러 번 나가서 자신이 실력을 뽐냈다.

    행년 1974甲 寅.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入学)하였고 장 덕은 사춘기(思春期)를 겪었다.

    장 덕은 이내 수면제(睡眠剤) 10알을 먹고 음독자살(飲毒自殺)을 하는 극단적(極端的)인 선

                 택을 시도한다.

    행년 1975乙 卯.

    4월에는 만 13(중학교 2학년)가 된 장 덕은 오빠와 함께 드래곤 렛츠(Dragon Ret)라는

                 듀엣 이름으로 데뷔하게 된다.

    행년 1976丙 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 장 덕은 어머니에게 절실히 간절하게 부탁하여 안양 예술고등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행년 1977丁 巳.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 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

                 로 출연한다.

    행년 1978戊 午.

    4장 덕(2)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으로 청순(清純)한 여고생(女高生)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행년 1979己 未.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국인(美国人)과 결혼(結婚)하며 미국(美国)으로 이민(移民)을 가게

                 된다.

    행년 1980庚 申.

    5월 제3MBC 서울국가요제에서 입상한다.

    행년 1981辛 酉.

    장 덕은 비싼 등록금(登録金)때문에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音楽科)에서 한 학기(学期)를 마친

                 뒤 다른 대학(大学)인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実用音楽科)로 옮기게 되며

                 그곳에서 음악(音楽)의 기초(基礎)를 포함하여 전문적(専門的)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실용음악과(実用音楽科)를 중퇴(中退)했다.

    또한 장 덕은 미국(美国)에 온지 1년만인 이 해는,

    1981辛 酉1017, 내쉬빌에서 이승언(?)과 결혼(結婚)한다.

    모친(母親)은 결혼(結婚)을 반대했으나 주인공은 결혼(結婚)을 강행했다.

    그렇다면 이 결혼(結婚)은 잘 한 결혼(結婚)인가?

    1981辛 酉년이면 21갑오대운(甲午大運)이다.

      이 갑오대운(甲午大運)을 설명하면, 자유주의적(自由主義的)이며 창의력(創意力)

      발휘되고 예체능(芸体能)의 계통에서는 매우 활발한 활동을 안정적으로 꾸준히 하게

      되고,

      그 동력(動力)은 오직 주인공 자신의 발상(発想)과 상상력(想像力)에서 창출(創出)

      되는 것이며,

      주인공과 같은 음악(音楽)을 전문으로 하는 세계에서는 음악(音楽)에 몰두하기 좋은

      운기작용(運気作用)이다.

      다만 가끔 불쑥 찾아드는 허무감(虚無感)으로 자신의 존재감(存在感)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무력감(無力感)으로 인한 느낌이 나쁜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결혼(結婚)이라는 것은 한몸이 아닌 두몸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고 서

      로를 지켜주는 부부(夫婦)가 되는 것이니 자유주의(自由主義) 사상(思想)이 강하게 작

      용하는 갑오대운(甲午大運)에서는 결혼(結婚)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결혼(結婚)은 자신의 미래(未来)를 장담하기 어려운 결혼(結婚)이다.

      그렇다면 왜 결혼(結婚)을 하게 되는가?

      사회생활(社会生活)에서 자신감이 부족해서이다.

      그동안 겪어왔던 여러 일들은 주인공에게는 음악(音楽)에 대한 명예(名誉)가 작용하고

      있으므로 능력을 발휘하여 연예계(演芸界)의 일을 열심히 하기는 했어도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자리잡은 외롭고 고단함이 가족(家族)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결이 되어야 함

      에도,

      1979己 未.

      1주인공의 어머니는 미국인(美国人)과 결혼(結婚)하며 미국(美国)으로 이민(移民)

      가게 된다.

      이 일은 주인공에게는 또 하나의 의지했던 언덕이 없어지는 무력감(無力感)으로 다가오

      게 된다.

      1978戊 午년과 1979己 未년으로 이어지는 현실감(現実感)주인공에게는 먹은 음

      식이 소화(消化)가 되지 않고 무겁게 체증(滞症)이 되어 있는 현상과 흡사하다.

      막연한 마음으로 기대가 크면서 눈앞에 현실(現実)이 있으니 살아야 하고 그 현실(現実)

      늘 자신에게는 왜? ?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

      다.

      현실(現実)에 대한 막연한 불만족....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음악(音楽)에 대한 열정(熱情)

      으로 몰두하고 모든 정신(精神)을 음악(音楽)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15세 소년기(少年期)부터 25세 청년기(青年期)까지 갑오대운(甲午大運)은 자신의

      열정(熱情)을 한 곳에 집중할 수가 있고 몰입(没入)할 수가 있는 조건이 되는 대운(大運)

      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자신의 무한한 꿈과 희망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과정을 준비하는 시기

      에 주인공은 그러한 범위를 뛰어넘어서 엄청난 시간을 앞당겨 미래(未来)를 만들어 가려는

      과정(過程)에 있게 된 것이다.

      좋게 표현(表現)하면 음악(音楽)의 비상(非常)함이 있다던가 천재(天才)라고 할 정도로 말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가 천재성(天才性)이 있는 특징에서 나타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인데 사람은 나이에 따라서 나타나는 적당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간(時間)의 흐름이고 순환운동(循環運動)인데 한가지만 특징이 나타난 다는 것은

      다른 부분에서의 부족함이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의 어린 나이에 가족(家族)의 만족함 속에서 천재성(天才性)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하는 조건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세월(歳月)은 시간의 흐름이고 멈춤과 흐름의 연속(連属)으로 이어지면서 생명(生命)의 성

      장 세포(細胞)가 시간(時間)의 운동(運動)속에서 나선형(螺旋形)의 배열대로 나타나야 행복

      (幸福)이라는 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국(異国)에서의 생활이 자신에게 만들어지는 조건속에서 조금이라도 위안(慰安)을 삼으려

      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정상적인 여성(女性)이 혼인(婚姻)을 통하여,

      또는 부부(夫婦)라는 이름 속에서 의지하고 싶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갑오대운(甲午大運)의 세월(歳月)속에서,

      1980庚 申. 1981辛 酉년은....

               음악(音楽)의 열정속에서 자신있게 일하고 싶고 보람을 찾고 싶은 열망이 있고

               소유할 명예(名誉)가 있고 일시적으로 영광(栄光)은 있으나 미래(未来)를 약속

               하는 결혼(結婚)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무효(無效)를 만들게 되는 것이니...

               극기력(克己力)을 발휘하여 넘어섰어야 하는 것인데....

      결국은 2년 남짓 1983癸 亥년,

      10월 이혼(離婚)을 하고 한국행(韓国行)으로 유턴(U - Turn)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은 짧은 기간 중 한국(韓国)에서 미국(美国)에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안정을 갖지 못하게 되면서 또 다시 한국(韓国)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일주 甲 申 월주 壬 辰

                                      대운 甲 午 월주 壬 辰

     행년 1981辛 酉- 결혼(結婚)은 무책임한 선택임을 알지 못한다.

     행년 1982壬 戌- 기대와 현실의 괴리(怪理)에 해답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아닌데....하면서 기대와 실망의 현실에 해답을 얻지 못한다.

     행년 1983癸 亥- 기대했던 안정감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

     과거(過去)로 회귀(回帰)하려는 본능이 발동(発動)한다.

     여기(미국)에서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미래(未来)에 대한 기대는 없어지고 무작정 돌아가고픈 마음뿐이다.

     특히 癸 亥년의 생각은 미래(未来)에 대한 희망과 인생(人生)의 중요한 것 등....은 모두

     현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되니 얼마전의 서울 생활이 그래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것이 과거(過去)로의 회귀본능(回帰本能)이다.

     이 본능에서 결혼(結婚)이라는 남편은 힘이 되지 못한다.

     주인공은 고국(故国)에 대한 향수병(郷愁病)이 심하여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달랑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帰国)해 버리고 한남동에서 홀로 생활을 시작

     했다.

     그래도 이러한 결론을 얻어서 귀국(帰国)하는데 결심이 간단하지 않았다.

     결혼(結婚)에서 남편이 큰 역할보다는 그래도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하자고 했던 배우자(

     偶者)이고 또한 모친(母親)의 사랑도 무시할 수가 없으니 고심끝에 원래의 활동무대인 서울

     의 연예활동을 포기하지 못하고 귀국(帰国)을 결심한 것이다.

 

     1984甲 子10장 덕은 영화(映画)와 음악감독을 맡았고 11월에는 정규 2집을 발표

     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으니 이에 장 덕은 실망하면서,

     결국 주인공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한 시간을 보냈고,

     식음(食飲)을 전폐(全閉)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呻吟)하게

     된다.

     1984甲 子년은 혼신(魂神)을 다하라고... 하는 신호다.

     스스로를 위하여 생각과 마음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이(安易)한 자세로 하게 되므로 그 결과는

     기대와는 전혀 근접하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공백기간(空白期間)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일만 생각하고 현실을 쉽게 본 것이

     다.

 

     1985乙 丑.

     1985乙 丑6월에는 혼란을 겪던 주인공을 오빠가 찾아와서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드디어 장 현 - 장 덕 남매(男妹)7년 만에 재결합(再結合),

     현 이 덕 이를 결성(結成)하며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었고,

     주인공 장 덕의 막힌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1986丙 寅. 갑오대운(甲午大運)에서 을미대운(乙未大運)으로 변화기인데....

     1986丙 寅6월,

                     오빠 장 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데다가 솔로로서의 욕심이

                     생긴 장 덕은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솔로로 전향하여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대운(大運)의 해석:

    을미대운(乙未大運)으로 변환기(変換期)에 접하여서 혼자 독자적(独自的)으로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발동하는 대운(大運)이다.

    내심으로는 오빠지만 남매(男妹)듀엣을 하기에는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을미대운(乙未大運)의 전환기(転換期)에 들어가면서 이미 영향을 받게 되는 이유이

    다.

    이 을미대운(乙未大運)은 현실(現実)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심리(競争心理)와 현실적(

    実的)인 부담감이 무척이나 심한것이다.

    자신이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은 무엇보다 강한데 성공여부에 대한 자신감은 장담하기 어렵다

    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싶다.

    갑오대운(甲午大運)이라고 한다면 한번 더 도약(跳躍)하는 기회를 잡았을 것이며 큰 성공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심리변화(心理変化).

    갑오대운(甲午大運)을미대운(乙未大運)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협동적(協同的)이냐?

         독자적(独自的)이냐....하는 차이다.

     이해관계(利害関係)가 아닌 매사를 독자적(独自的)으로 자유적(自由的)으로 처리하고 픈 생

     각이 강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心理)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고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상대가 없음은 정신적(精神的)으로 문()이 굳게 닫히는 경우가 되

     는 위험이 있고,

     그러한 경우에는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을 오가는 것이기에 극()과 극()을 생각하게

     된다.

     원만하게 되는 때는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스스로를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경

     우에는 위험신호가 될 경우가 되는 것이다.

     독단적(独断的)인 경우란 위험성이 있게 마련이다. 상대가 있다면 위로를 받기도 하고 위로

     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도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창작세계(創作世界)는 외롭다. 두뇌(頭腦)의 중노동(重勞動)이 요구되는 세계다.

     예술계(芸術界)는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이 혼자 독단적(独断的)으로 하고 싶은 반면에 외로운 세계는 혼자의 몫이다.

 

     1986丙 寅. 1987丁 卯년,

    주인공, 장 덕은 제2의 전성기(全盛期)를 보내며 성공한 여성가수(女性歌手)로서 스타로

                  인정받았다.

     일주 甲 申 월주 壬 辰

                             대운 乙 未 월주 壬 辰

     1986丙 寅. 1987丁 卯. 1988戊 辰년.

     이 1986년과 1987년은 주인공이 자신의 열정이 넘쳐서 자신이 목적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까지 혼신(魂神)의 힘을 다 한다면 그 어떤 목적

     도 달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 의 식신(食神), 상관(傷官)은 예능성(芸能性)의 능력이다.

     이 능력(能力)이 능력(能力)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목적(目的), 즉 표적(標的)까지 도착하여

     달성(達成)하는 것인데 만약 표적(標的)까지 가지 못한다면 노력은 있으나 결과는 없는 것

     이니 헛수고이고 실패(失敗)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표적(목적)까지 도착하게 되니 이 2년간의 기간에서는 성공을 하게 된다.

 

     1988戊 辰년에는,

                       주인공은 다른 싱어 송 라이터들과 함께 음악(音楽)발표를 하였고,

                       특히 앨범의 타이틀곡 [얘얘]는 무대(舞台)에서 장 덕의 귀엽고 깜찍한

                       율동(律動)과 춤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깜찍한 율동(律動)은 있다고 해도 춤으로서의 인정을 받지는 못

                       한다.

     1988戊 辰년에는,

                      남들의 춤을 따라서 하는 정도 쯤은 가능하겠지만 스스로가 춤을 춤답게

                      표현(表現)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89己 巳년에는,

                      2월 오빠 장 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활동을 모두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장 덕의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돕기 위해 여의도에 코아기획이라는 프

                      로덕션을 설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가수(歌手)들도 영입하였는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

              듯이 장 덕의 새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한창 마무리에 이르고 있

              었을 즈음....

     1989己 巳618일,

                      장 현은 국립의료원에서 설암(舌癌) 3기라는 청천벽력(青天霹靂)같은 판

                      정을 받는다.

                      오빠 장 현은 암()발병 사실을 동생에게 말하지 않았으나 결국 앨범 작

                      업 막바지에 동생 장 덕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혔다.

              장 덕은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

                고 생각하면서 오빠에 대한 자책감(自責感)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표한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는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주인공 자신의 운명(運命)을 예고한 것 같은 타이틀곡이 되었다.

     1990庚 午년,

                    오빠 장 현이 설암(舌癌)으로 쓰러지게 되면서 주인공 장 덕은 활동을 중

                    단하고 오빠의 병간호(病看護)를 하게 된다.

                    오빠의 병간호(病看護)를 하던 장 덕은 점점 수면제(睡眠剤)가 없으면 잠을

                    못 이루는 심한 우울증(憂欝症)에 시달리고 있었다.

     1990庚 午24일 새벽 2시 경....

                    서울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에서 장 덕은 다량(多量)의 수면제(睡眠剤)

                    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 가지 약()을 동시에 복용(服用)하고 난 후 이상

                    증세를 일으키며 신음(呻吟)...

                    의상(衣裳) 담당자가 발견하고 장 덕의 부친(父親)에게 연락하여,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동시 투여(투약)에 따른 상승작용(相乗作用)

                    , 약물(薬物) 상호작용(相互作用)에 의한 쇼크로 운명(殞命)했다.

     주인공1990庚 午24일 운명(殞命)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1989己 巳년이다.

     1989己 巳년은?

                      일주 甲 申 월주 壬 辰

                                                 대운 乙 未 월주 壬 辰

     1989己 巳년에서는....

     자신의 할 수 있는 능력과 열정(熱情)을 모두 한곳에 쏟아 부어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에너지조차도 남기지 않고 소모시키는 생각이다.

     오빠 장 현의 설암(舌癌)진단과 함께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아마도 주인공은 이 시기에는 정상적인 사고(思考)를 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상상(想像)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운기작용(運気作用)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하다.

     생각이 상상(想像)의 세계(世界)에 머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허공(虚空)에 뜬 기분을 느

     끼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배우(俳優)의 직업(職業)에서는 배우(俳優)가 해야하

     는 영화(映画)의 역할에서 마치 신()들린 것처럼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주인공이 정상적인 심리상태(心理状態)가 아닌 상황에서 약()을 복용(服用)하였다면 스스

     로가 약()의 적당한 복용(服用)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누군가 옆에서 있었다면 제지(制止)를 하였거나 도움을 줄 수가 있었을 것이지만,

     을미대운(乙未大運)에서는 독자적(独自的)인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니 모든 것이....

     역부족(力不足)이라고 본다.

 

     주인공의 팔자(八字)에서 일에 몰두할 수록 자신도 모르게 더욱 더 열정적(熱情的)으로 해

     야 한다는 강박관념(強迫観念)이 강하게 발동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임진(壬辰)월의 특징이다.

     이것은 인생관(人生観)의 뿌리가 되므로 무엇보다 어떠한 경우나 조건에서 자신을 지킬 수

     가 있는 정신력(精神力)이 무너지지 않고 지켜져야 하는데....그 정신력(精神力)을 지켜주

     는 보호막이 주인공 스스로가 인식(認識)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묻혀

     열정적(熱情的)으로 하다보니 몰입(没入)속에서 현실(現実)을 의식(意識)하지 못하는 것인

     데 이 증세는 위험신호다.

     혹은 이러한 비유도 할 수가 있는데 바다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 썰물이 되어서 갯벌에서 일

     을 하는 과정에서 밀물 때가 되어서 물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 물을 피해서 나와야 하거늘,

     아무 느낌도 없이 그대로 있으면 결국은 물에 빠져 희생되는 것이다.

     또 다른 사정을 한번 보면....

     가령 주인공의 모친(母親)이 미국(美国)의 남매(男妹) 듀엣 카펜터스를 모델로 하였다.

     미국(美国)의 남매(男妹) 듀엣 카펜터스의 여자(女子) 동생 카렌 카펜터스는 키가 큰데

     가수생활(歌手生活)을 하면서 날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체중(体重)을 감량하려고,

     무리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강행(強行)하였던 것인데,

     그 후유증(後遺症)으로 인하여 거식증(拒食症)이라는 우물에 빠져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

     하고 목숨을 잃었다.

     사람이 먹어야 사는데 비쩍 마르면서도 먹는 것을 거부하는 거식증(拒食症)이야 말로...

     그 체중조절(体重調節)의 상상(想像)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서 결국은 목숨

     을 잃는 최악(最悪)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가지 일에 빠져들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느낌이 없어서 인식(認識)하지

     못하는 위험이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에너지(기본적인 기운)가 흡혈귀(吸血鬼)에 피를 빨리듯이 뿌리가 뽑혀서 빨려 들어

     가듯 한 방울의 에너지(기본적인 기운) 마저 소모시켜 버리고 산화(散化)되어 버리는 것

     이 되니 스스로가 아무런 제약(制約)도 없이 그대로 허공(虚空)을 향해서 가버린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精神的)조건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에서는 신()의 세계(世界)에 발을 들

     여놓는 경우가 많은 특징이 있다.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保護膜)이 약해질 때 무엇인가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본능이 작용

     하게 되는데 그것은 막연하게 허공(虚空)을 바라보면서 목적(目的)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

     낌이 있을 때 이런 현상을 기운이 뜬다고 하는데....

     망상(妄想)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느낌이 있다면 아무 일도 없게 되는데

     일단 약물(薬物)에 쉽게 의존하게 된다.

     약물(薬物)은 항생제(抗生剤)가 함유하게 마련인데 하루 이틀 - 시간이 지나면서 약물(

     物)의 지배(支配)를 받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時間問題).

     이성적(理性的)인 세계(世界)와 상상(想像)의 세계(世界), 약물(薬物)의 지배(支配)를 받

     는 정신(精神)의 세계(世界)는 삶과 영혼(霊魂)의 세계(世界)만큼이나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나 그 사이의 폭은 너무나 좁고 미세(微細)하여 기준이 모호한데 모든 운기작용(運気

     作用)은 흔적이 없이 다가 오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이 안개와도 같은 세계를 느끼는 것은 팔자(八字)에서 정해진다.

    주인공은 이 세상의 무거운 짐을 놓지 않고, 영혼(霊魂)의 세계(世界)에 끌고가서,

     못다한 그 천재성(天才性)을 발휘하려나 보다.

     세상 사람들이 수면제(睡眠剤) 과다(過多) 복용(服用)으로 알려진 주인공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自殺)설까지 나돌며 세간(世間)의 관심이 불거졌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자살(自殺)의 심리(心理)와 약물복용(薬物服用)의 후유증(後遺症)

     의 심리(心理)와는 반드시 구별이 된다.

     주인공은 현재 상황을 비관(悲観)하여 자살(自殺)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청소년기(靑少年期)때의 생각과는 구별되고,

     우울증(憂欝症)으로 심신미약(心身微弱)하여 약물(薬物)의 지나친 복용(服用)으로 인하여

     후유증(後遺症)이라는 이유가 정확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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